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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정치로 난국 헤쳐갈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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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

이런 정치로 난국 타개는 어렵다. 이명박(MB)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세간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려할 일이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안보스타일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 지가 엊그제인데, 지금 예산안 강행 처리로 정치가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는 군 인사에 대해 “이번 인사는 가장 공정했다”고 말하는 한편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되풀이되는 일방통행적 국정운영을 보면 보통 사람에게도 당연시되는 상식이나 판단조차 대통령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한 외국 언론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모순투성이의 한국 정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연줄인사를 계속하면서 공정 사회를 외치는 모순, 병역면제자로 안보지휘부를 구성해 놓고 국민들에게 단합된 안보자세를 요구하는 모순, 정치 선진화를 외치면서 정치를 실종시키는 모순, 그리고 국민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모순, 정말 한국 정치는 패러독스 그 자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미숙에서 오는 과도기적인 현상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아마도 이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는 대통령의 CEO 스타일 국정운영을 보면 얻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결과주의다. 중요한 것은 정책비전이나 정책과정보다 결과를 통해 지지율 끌어올리는 것이다.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국정철학에 민심에 대한 두려움이나 배려 같은 것이 끼어들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예산안 강행 처리가 “MB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의를 무시한 일방 통행적 정치가 어떤 업보를 가져올지 두려워하는 목소리다. 이를 알면서도 이런 국정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MB정치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7년 미국 대선에서 한 연설이 생각난다. “공약이 아무리 선량한 의지에서 나왔다 해도 결국은 워싱턴 정치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국가적 사업인 양육수당을 팽개치고 실세들의 지역예산을 늘린 것을 보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구조를 타파해야 할 대통령이 한나라당 돌격대 의원들에게 ‘격려전화’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내건 공정(公正)사회와 선진민주 국가라는 구호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돈의 중요성에 대해 17세기 오스트리아의 한 장군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돈, 돈, 그리고 다시 한번 돈.” 장군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CEO대통령은 어떻겠는가. 국정운영에 돈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4대 강 사업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제때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대통령의 업무수행을 판가름하는 잣대다. 그래서 대통령은 강행 처리를 통한 신속한 돈의 확보에 주사위를 던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국정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돈을 확보하고 썼느냐에 있지 않다. 돈과 정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결합시켰느냐에 달려 있다. 돈과 정치의 가장 바람직한 결합은 다름 아닌 의회에서의 예산 심의와 처리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막스 베버는 바로 이러한 과정이 의회의 ‘통법부화’를 막고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의회라는 용어는 “말한다(talk)”에서 왔다. 그래서 의회정부는 영원한 대화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예산안 강행 처리는 의회의 이런 기능을 죽여 버렸다.

 루소가 영국 사람들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영국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의원들을 선거할 때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모두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루소의 말처럼 우리도 자유를 누리는 것은 선거할 때뿐인 것 같다. 강행 처리를 보며 우리가 뽑아준 의원들의 졸(卒)로 전락하고 있지 않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MB정권이나 한나라당의 앞날이 아니다. 결과주의에 매몰된 일방통행적 국정운영에 대한 냉소주의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이 불가능해지는 그런 사태인 것이다. 국민과 언론에 의한 엄중한 권력 감시가 요구되고 있다. 국민이 졸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