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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갈등 부른 대법원 ‘거꾸로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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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차 사내 하청은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는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2년을 초과해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옛 파견근로자보호법 조항에 따라 정규직화 문제가 현안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경제계는 즉각 “산업 현장의 실상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기업 경쟁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2008년 말 현재 300인 이상 국내 사업장 근로자 169만여 명 중 사내 하도급 근로자는 22%인 37만여 명에 달한다. 반면 노동계는 ‘굳히기’에 들어갔다. 현대차 사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1941명이 집단소송을 낸 데 이어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5일간 울산1공장 점거농성을 벌이는 등 노사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대법원 판결문은 6페이지에 불과하다. 이 판결문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동일 원고-동일 사안’을 놓고, 더욱이 사회·경제적 중요성이 큰 쟁점에 대해 어떻게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고 거꾸로 판결을 했느냐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2006년 3월 “파견 근로로 보기 어려운 만큼 현대차에 고용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부산고법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최모씨 등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사내 하청업체에 경영상, 인사관리상의 독립성이 없고 임금도 현대차가 결정한다”는 등의 이유로 상고했으나 “사건 기록과 원심판결 및 상고이유서를 모두 살펴봤으나 상고를 주장할 이유가 없다고 인정된다”며 기각한 것이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두 판결 모두 현대차 사내 하청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며 “대법원 판결의 결론을 바꾸려면 전원합의체에서 재판해야 한다는 법원조직법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경제적 파장이 큰 사안에 대해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전원합의체를 통해 정리했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2006년 판결은 가처분에 관한 것이어서 반드시 전원합의체를 거쳐야 할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인정’ 놓고도 논란=7월 대법원 판결은 사실관계 인정에 있어서도 시비를 낳고 있다. 법률심인 대법원은 항소심이 증거채택에 관한 채증법칙 등을 위반하지 않는 한 항소심이 확정한 사실을 전제로 판단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핵심 쟁점인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항소심과 반대로 사실 인정을 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법이 ▶현대차가 별도의 작업 지시를 하지 않았고 ▶협력업체 스스로 인사노무관리를 했다고 했으나 항소심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제시하지 않은 채 현대차의 작업 지시와 근태 관리를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에서 돌려보낸 최씨 부당해고 소송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권석천 기자

◆도급과 파견근로 차이점=도급은 어떤 일을 완성해주는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을 말한다. 파견 근로와 비슷한 형태인데, 작업지휘권이 협력업체에 있으면 도급이고 원청업체에 있으면 파견 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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