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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같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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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30면

집에서 고화질(HD) 방송을 보고, 밖에서는 휴대전화로 DMB를 시청한다. 너무나도 익숙해진 모습이지만 우리가 이런 서비스를 즐기기 시작한 지는 3년밖에 안 됐다. 도입 과정도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발단은 2000년 8월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디지털방송 전송 방식의 재검토를 요구하면서다. 이들은 유럽식(DVB)으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사가 정보통신부·전자업계와 합의해 미국식(ATSC)으로 결정한 지 3년이 지난 때였다. 이때부터 5년 동안 미국식과 유럽식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특히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MBC가 방송 방식 변경에 앞장섰다. 2003년에는 ‘디지털TV 방송 방식 변경을 위한 소비자운동’이라는 시민단체도 결성돼 막 임기가 시작된 노무현 정부에 유럽식 채택을 요구했다.

김창우 칼럼

당시 방송사들이 내세운 논리는 미국식이 기술적으로 뒤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식을 채택했다는 것도 지적했다. 미국식은 LG전자 등이 원천기술을 보유해 실질적으로 한국 표준이라는 점도 무시했다. 오히려 미국을 강조해 반미 정서를 슬쩍 건드렸다. 업계에서는 “유럽식으로 전환하면서 HD 대신 표준화질(SD) 여러 채널로 가려는 것이 방송국의 속셈”이라고 수군거렸지만 누구도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았다. 이런 논란은 2005년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결국 HD 방송만 늦어진 셈이다. 방송사들은 미국식을 수용하는 대신 지상파 DMB 채널의 절반 이상을 확보했다.

다채널방송(MMS)에 대한 방송사의 열망은 2006년 수면으로 떠올랐다.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MMS 시험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는 난리가 났다. 화면이 깨지고 축구공이 공간 이동을 한다는 불만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국의 방송 규격에서 한 채널은 6메가헤르츠(㎒)의 전파 대역으로 19Mbps(초당 1900만 바이트)의 데이터를 전송한다. 6차로로 19t 트럭(HD 방송)이 달리는 셈이다. MMS는 같은 길을 13t짜리 트럭 한 대(HD 방송)와 3t 트럭 두 대(SD 방송)가 이용하는 방식이다. 화질이 나빠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결국 MMS는 흐지부지됐다.

사람을 붕어로 아는 것도 유분수다. MMS의 망령은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 서울 하늘을 떠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주 “지상파 MMS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EBS를 포함한 방송 4사 사장단도 “MMS 공동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가정에 들이는 TV 크기가 이제 40인치를 지나 50인치에 달한다. 작은 화질 차이라도 갈수록 두드러진다. 그런데도 지상파 방송사가 MMS에 목을 매는 것은 채널이 늘어야 광고 수익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방송 수신료를 내고 더 많은 채널을 볼 수 있다면 시청자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콘텐트의 질이다. 허름한 화질로 재방송과 광고만 잔뜩 보여 준다면 괜찮은 방송 한 채널보다 나을 게 없다.

일곱 번째 시즌을 맞은 미국의 의학드라마 ‘닥터 하우스’는 매회 희귀병에 걸린 환자를 살려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전문 지식이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얘기다. 과학수사 드라마의 정석으로 통하는 ‘CSI’는 11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로마의 검투사 이야기를 다룬 ‘스파르타쿠스’는 편당 25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화려한 볼거리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반면 국내 드라마는 대부분 막장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사랑 타령을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세간에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질하는 것, 수사드라마는 경찰서에서 연애질하는 것, 역사드라마는 궁중에서 연애질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도는 이유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 등에서 내놓는 높은 수준의 다큐멘터리를 국내 지상파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만날 수 있다. 연예인들의 개인기와 아이돌그룹의 춤과 노래가 나머지 시간을 채운다.

그런데도 지상파 3사의 점유율은 14개 케이블 채널까지 합치면 72%에 육박한다. 나머지를 160개 케이블 채널이 나누고 있다. 지상파 3사는 2조8000억원 규모인 지난해 방송 광고시장에서 77%인 2조2000억원을 거둬들였다. 외국 방송사와는 제대로 경쟁을 못 하지만 고만고만한 국내 시장에서는 독보적이다. MMS까지 허용하면 지상파 방송의 독점적 지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시청료 더 내고 허름한 방송만 보는 것,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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