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 이번엔 무슨 짓 할지” … “두 번씩이나 당하겠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연평도 주민들이 17일 선착장에서 육지로 나가기 위해 해병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배에 오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군은 “연평도 포사격을 강행할 경우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연합뉴스]


“여기부터는 못 들어가십니다.”

 17일 오후 연평면사무소 입구 해안가도로에서 동쪽으로 300m쯤 가자 바리케이드 앞에 선 초병 2명이 길을 막았다. 눌러쓴 방탄모 아래로 치켜뜬 눈빛이 날카로웠다. 통제구역 시작점의 행정구역을 물었지만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해병대 연평부대 소속이 아니라 외부에서 지원을 온 것이라고 했다. 사격훈련이 끝나면 복귀하느냐는 물음에 초병들은 아예 입을 닫았다.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의 추광호 중령은 “북한의 공격 이후 배치한 무기 등 군사시설이 적에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 당해봤으니 두 번이야 당하겠어?” 집에서 TV를 지켜보던 이유성(83) 할아버지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군이 사격훈련을 강행하면 대응 타격하겠다는 북한의 위협이 속보로 나왔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착잡한 표정까지 감추진 못했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달 23일 북한의 해안포 공격 이후 한 번도 섬을 떠나지 않았다.

 북한군의 공격 23일째. 연평도는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우리 군의 사격훈련 예고에 북한이 추가 도발 위협을 하면서부터다. 해병대 연평부대의 사격훈련은 18일에서 21일 사이에 하루 중 실시된다. K-9 자주포와 105㎜ 견인포, 벌컨포, 81㎜ 박격포 등이 동원된다. 이에 대해 북한은 “자위적 타격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주민 이기옥(50·여)씨는 “두 번의 연평해전과 이번 포격에서 봤듯이 북한은 절대 빈말을 하지 않는다”며 “이번엔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 소식에 통합방위상황실이 있는 면사무소 직원들도 분주해졌다. 방탄모에 피아식별띠를 두른 군부대 관계자들이 쉴 새 없이 상황실을 오가며 사격훈련 시 주민 대피 계획을 점검했다. 경찰은 각 방공호에 구호물품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를 점검했다.

 방공호에는 난로와 간단한 취사도구, 라면, 생수, 담요 등 생필품이 놓여 있었다. 사격훈련 일정이 확정되면 훈련 시작 전에 섬에 있는 모든 민간인은 방공호로 대피해야 한다. 합참 추광호 중령은 “대피령이 내려진 뒤 민간인의 통행은 전면 제한된다”고 말했다. 섬에는 주민 116명과 취재진, 경찰 등 270여 명의 민간인이 남아 있다.

 섬에 파견 나와 있는 유관기관 직원들 사이에도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가 화젯거리였다. 주민들이 머물 임시 목조주택을 짓고 있는 전국재해구호협회 김정길 팀장은 “내일 임시주택 공사를 끝내고 일요일에 나갈 계획인데 그때까진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곁에 있던 소방방재청 복구지원과 김영복씨에게는 안부를 묻는 가족과 친구들의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김씨는 “설마 북한이 또 악수를 둘까 싶었는데 위협 소식을 듣고 보니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23일 전 북한의 공격으로 연평도가 입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식당과 상점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눈이 녹지 않은 골목길에는 사람의 발자국도 뜸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격으로 부서진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식당의 어항에는 죽은 물고기와 멍게, 굴이 썩어 악취를 풍겼다. 포격으로 불탄 폐허에서는 아직도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몇 집 앞에는 부서진 창틀을 교체하려고 새로 짠 플라스틱 창틀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연평도=유길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