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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축구·힙합에 푹 빠진 수학자,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석진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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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나는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힙합 실력을 뽐냈다. 그 틈에 낀 중년 아저씨. 배가 나왔다. 그러나 손 뻗고 스텝 밟는 품새만은 예사롭지 않았다. 이어진 관객들의 한마디. ‘어, 누구야, 좀 추는데.’” 지난달 12일 서울대에서 열린 교내 힙합동아리 HIS(Hoofers in SNU·서울대 춤꾼들) 정기공연의 한 장면이다. 남자는 수리과학부 강석진(49) 교수. 이 동아리 지도교수다. 체면은 날려버리고 해마다 직접 무대에 뛰어든다.

글=김준술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그의 튀는 인생은 유년 시절 시작됐다. 명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축구 선수가 되는 데 모든 걸 걸었다. 결국 포기했지만 지금도 서울대 자연대 축구부 감독을 맡아 열심히 ‘볼’을 찬다. 세계적 수학자가 된 지금은 입시철마다 학부모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처럼 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이 어려우면 더욱 그렇다. “성적 올리는 비결을 알려 달라”는 요청이 밀려든다. 수학과 축구·힙합을 버무린 세 박자 인생의 ‘명물 교수’를 13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수학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수학이 싫어 문과로 갔는데 경제학을 전공해 생고생을 했죠. 대체 수학 잘하는 비결은 뭡니까.

 “프로가 되려면 결국 재능이 있어야 하죠. 그러나 노력도 필수예요. 사람들이 ‘쟤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는 안 해서’ 이렇게 말해요. 저는 농담으로 ‘그 애는 머리가 나쁘다’고 해요. 노력을 해야 되는 것도 모르는 머리가 좋기는 무슨. 재능이 모자란다면 수학을 수준에 맞게 즐겨야 합니다. 골프 같은 스포츠도 그렇잖아요. 즉 진도를 나가도 밀도가 다르게,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달리 공부해야죠.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배우면 수업에 만족하는 학생은 없어요. 내 수준에 맞게 즐기는 게 중요해요.”

●머리 좋은 사람만 수학을 잘한다는 얘긴 아니군요.

 “내가 ‘힘들게’ 생각해서 해법을 터득하는 게 중요하죠. 사실 힘들게 진이 빠질 정도가 돼야 재미도 느끼는 겁니다. 뭐든지 적당히 어렵지 않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제가 수학을 전공한 이유도 어렵기 때문이었어요. ‘쉽고 재밌게 가르친다’, 이건 사실 불가능하죠.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걸 봐요. 바둑·골프·축구 모든 게 어렵고 조금씩 실력을 늘려 가는 맛이 있죠.”

●수학 우등생이 되려면 수식만 잘 풀면 됩니까.

 “생각은 국어로 하는 겁니다. 수학 문제는 보통 정확히 이해를 못 해서 못 풀죠. 근데 문제는 말로 써 있잖아요. 시적·감각적 언어 못잖게 ‘물리적·합리적 언어’를 잘 배워야 합니다. 물론 ‘감성적 코드’도 필요해요. 주어진 방식을 고집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소리거든요. 저희 수학자들이 논문 쓸 때 최고로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아세요. 아름다움, 멋, 이런 겁니다. 논문을 평가할 때 ‘이건 큐트(cute·귀여운)하다’ 혹은 ‘저건 매그니피슨트(magnificent·감명깊은)하다’ 이렇게 등급을 매겨요.”

●그렇다면 어떤 수학책이 좋습니까.

 “저는 그림이 많고, 말로 된 설명이 많은 책을 추천해요. 생각이 중요하니까. 수식을 푸는 것도 좋지만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문제 형태를 만들지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죠. 바로 그게 수학이에요. 근데 학부모들은 당장 수식 답안을 도출하고 점수 잘 나오는 걸 따지니, 참.”

●일상에선 사칙연산만 잘해도 되지 않나요. 수학을 어느 수준 이상으로 공부해야 되는 이유는 뭡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면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당신 매일 시계 보지 않느냐’고 해요. 시계 보는 건 언제 배웠을까요. 수학 시간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 계획 세우고, 일의 순서를 정하고, 바로 ‘알고리듬(algorithm·문제해결 절차)’을 짜는 거죠. 판단이란 게 뭡니까. 우선권이 뭐고, 효과가 어떤 게 큰지 따지는 건데, 바로 이런 게 수리적 사고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실 수학을 많이 써요. 재밌는 예가 있죠. 술값을 나눠서 낼 때 ‘N분의 1’로 말하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어요. 여기서 N은 임의의 자연수겠고 2·3·4… 얼마든지 다양한 수가 올 수 있겠죠. 사실 수열 비슷한 건데요, 하하.”

●왜 그런 수학적 표현을 쓰는 겁니까.

 “먼저 예를 몇 가지 더 들어볼게요. 노사 타협 등에서 공통분모라고 표현하는데 이게 사실은 틀렸죠. 다른 주장 속에서 같은 걸 끌어내자는 것이니 최대공약수가 맞는 말이죠. 변곡점도 마찬가지예요. 주가가 바닥을 쳤을 때 변곡점이 아니라 극소점을 지났다고 해야 맞죠. 변곡점은 그냥 오목과 볼록이 바뀌는 건데요. 그럼 왜 이렇게 수학적 표현을 많이 쓰는 걸까요. 설득력이 있고, 시쳇말로 ‘뽀대가 난다’고 생각하는 거죠. 수학적으로 근거를 들면 설득력 있고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는.”

●수식보다 생각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수학으로 유명한 인도 아이들은 19단을 외우지 않습니까.

 “그걸 왜 외우는지 잘 모르겠어요. 십진법을 쓴다면 구구단만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물론 인도는 수학적 전통이 있죠. 얼마 전 인도의 수학자 대회에 갔더니 대통령부터 수학의 역사와 철학을 얘기하더라고요. 심지어 수학을 시(詩)로 표현한 옛 문헌까지 거론하면서요. 그러나 우리도 못 할 것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수학은 늦게 시작됐지만 잘하고 있어요. 한번도 겁 먹어본 적 없어요. 젊은 세대에 굉장히 기대를 겁니다.”

●2008년에 15세로 서울대 최연소 합격(수리과학부)을 했던 수학 천재 이수홍군 같은 학생을 말하는 겁니까.

 “사실 이군뿐이 아니죠. 서울대 수리과학부 상위권 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다만 어떤 목표와 야망을 갖고 역량을 계발하고 도전하느냐가 과제죠. 제가 학생들에게 ‘히말라야 가서 8000m 봉우리를 가리키고 나아가야지 왜 발밑만 보느냐’고 그래요. 제가 25년 전 미국 예일대로 유학 갈 때도 굉장히 겁이 났죠. 도망치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학 교과서에서 봤던 학자들과 밥 먹고 부대끼는 게 좋았죠. 국비장학생이라는 좋은 조건으로 갔으니 고생하며 유학생활 했던 선배들 부끄럽지 않게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도 컸고요.”

●젊은이들은 순수 학문을 기피하는 풍조가 심합니다.

 “고집과 자부심, 고고함 이런 게 사라지는 게 아쉽죠. 강의 때 학생들이 질문해요. ‘선생님은 학자로서 언제가 제일 짜릿하냐’고요. 저는 ‘스타벅스에서 수학 공부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보면 짜릿하다’고 해요. 집안에 원래 인문학자가 많아서 어릴 때부터 인문대·자연대 1류, 사회대·공대 2류, 의대·법대는 3류 취급을 했어요.”

●학원 전단을 보면 명문대 수학과 출신의 강사가 많습니다.

 “교육은 기본과 본질에 충실하냐로 판단해야죠. 사교육에서 이걸 해준다면 사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성적과 문제풀이 기술을 강조하죠. 학원 강사 중엔 생계형도 많겠지만 너무 팽창했어요. 답답하죠.”

●지난해 7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죠. 시상식에서 유치환 시인의 ‘깃발’을 읊어서 화제가 됐는데.

 “오만한 척, 잘난 척했던 거죠 뭐, 하하. 수학자로서 너무 외로워서, 제 마음을 자꾸 맑게 만들려는 뜻에서, 처음에 수학을 인생 동반자로 선택했을 때의 절박감 같은 걸 표현하려던 거였죠. 상금이 3억원이었는데, 반은 마누라 주고 반은 서울대와 대한수학회 등에 기부했어요. 아내에게 반 주니까, 나머지 반은 어디 갔느냐는 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크크.”

인터뷰 날 입고 나온 힙합동아리 점퍼 차림의 강 교수가 축구공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토록 원했다는 축구를 놔두고 수학을 택한 이유는 뭡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어요. 아버지는 반대하셨죠. ‘서른 살 넘으면 할 일이 없어진다’면서요. 사실 그때만 해도 프로팀도 없었고. 어머니는 ‘남을 속이는 걸 왜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운동하려면 차라리 달리기를 하라고. 우리가 보통 축구 보며 ‘그림 같은 플레이, 마술 같은 플레이’ 이러는데 그걸 보고 오해를 했던 거죠, 하하.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되니 체격도 그렇고 안 되겠는 거예요. 앞이 잘 안 보였고 그래서 포기했죠.”

●어린 시절이긴 하지만 쉽게 포기가 됩니까.

 “한참 방황했죠. ‘어떻게 살아야 되나, 유한한 인생을, 축구만 한 게 뭐가 있을까’ 하고요.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어릴 때부터 수학 잘하면 기분이 좋았어요. ‘너희랑 나는 달라’ 이런 우쭐한 생각도 하고요. 그래도 전공할 생각은 전혀 없었죠.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 축구를 포기하니 남는 게 많지 않더라고요. 결국 중3에서 고1 때 수학에 승부를 걸어 보겠다고 마음먹었죠.”

●자연대 축구부 감독을 맡은 건 그때 맺힌 한(恨) 때문인가요.

 “94년 감독으로 부임했죠. 지난 10년간 교내 축구대회에서 여섯 번 우승했어요. 뿌듯하죠.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 언제인지 아세요. 81년 자연대 축구부 2학년일 때 총장배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어서 2대0으로 이겼을 때였죠. 제가 14번을 달고 뛰었는데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번호잖아요. 지금도 14번이죠. 당시 우승했을 때 공대 학장님이 ‘자연대 14번은 공대로 전학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어떤 축구를 지향합니까.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건 정정당당하고 아름다운 축구죠. 인생을 그렇게 살자는 거니까.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스페인 축구를 지향하면서 쇼트 패스 많이 하고 그러더라고요, 하하. 2002년 월드컵 때 제가 민간인으로 축구협회 기획자문위원을 맡았는데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말이 지금도 뜨겁게 남아있어요. ‘16강은 겉으로 드러난 목표일 뿐, 내 꿈은 축구판을 바꾸는 것’이라고요. 지역별·연령별 리그 활성화 등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려 했죠.”

힙합 동아리 학생들과 무대에 선 강석진 교수(왼쪽 앞).

●힙합은 언제부터 연마했습니까.

 “2000년에 선형 대수학을 가르칠 때 한 학생이 힙합동아리 회장이었어요. 저한테 지도교수를 맡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보수적이라 처음엔 ‘남부 흑인의 저열한 문화를 왜 따라 하느냐’고 했죠. 그러다 하도 부탁하니 공연 하나만 참관해주고 관두겠다 생각했죠. 막상 가서 보니 흥이 나고 이게 재밌는 거예요. 음악을 탄다는 게 뭔지 느껴지더라고요. 멋있구나 생각했죠. 제대로 배울 만한 능력은 안 되고, 팝핀이며 왁킹 같은 힙합 동작을 학생들과 익혀서 해마다 정기공연 때 무대에 오릅니다. 그런데 갈수록 배가 나와서.”

●학자로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입니까.

 “문제가 안 풀릴 때죠. 아니, 사실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모를 때예요. 학생들에게 말하는 게 있어요. ‘수학을 선택해서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른 걸 선택했으면 불행했을 것 같다’고요.”

j 칵테일 >> 정인보 선생의 외손자, 불량 학생에게 ‘원터치’

강석진 교수의 집안은 명문가다. 외할아버지는 위당 정인보(1893~?) 선생.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민족사학자로 ‘국학(國學)’을 바로 세운 인물이다. 어머니는 한학자 정양완(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씨, 아버지는 국어학자 강신항(성균관대 명예교수)씨다.

강석진 교수가 즉석에서 종이에 설명한 무한차원과 관련된 리 대수학 이론의 일부.

●학자로 성공하는 데 가풍(家風) 영향은 없었나요.

 “분명히 있었죠. 반칙 안 하고 살자. 우리는 당당하게 살자 이런 마음가짐을 어려서부터 배웠죠.”

●외조부에 대해 기억나는 에피소드는요.

 “사실 제가 외할아버지 뵌 적이 없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 한국전쟁 때 납북돼 돌아가셨으니. 하지만 어른들은 제게 늘 외조부를 강조하며 머리에 각인시켜줬어요. 육당 최남선 선생이 절친이셨는데, 어머니께도 그랬다고 해요. ‘네가 많이 닮았는데 겉보다 속을 닮으라’고요. 제가 유학 갈 때 외조부의 후배 한학자께서 글을 써준 게 있어요. 박학독지(博學篤志)라는, 넓게 공부하되 뜻을 굳건히 하라는 것이었죠. 실제 그런 자세로 공부했고,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평범하지 않은 가족들 두는 게 편한 일은 아닌데요.

 “맞아요. 항상 비교가 되고 그러니까 부담스럽죠. 집안 망신을 시키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도 많이 들고요.”

●그래서 어떻게 처신했나요.

 “그런데 제가 실은 여기저기 망신살이 많이 뻗쳤지요, 크크. 고교(홍대부고) 1학년 때엔 우리 반 양아치랑 옛날 말로 ‘원터치’를 깐다고 하나요. 아무튼 주먹으로 이빨을 날렸다가 돈을 물어줬어요. 친구들 돈을 뺏고 나쁜 짓 하던 녀석이었죠. 언젠가는 친구들과 농구장 갔다가 패싸움이 일어났어요. 저는 도망왔는데 친구들이 고자질해서 다 같이 정학을 받은 일도 있었죠.”

강석진 교수는 표현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예일대에서 박사를 딴 그는 무한차원에서 대수 구조를 연구하는 ‘리(Lie) 대수학’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업적이 있다. 또 그가 2002년 발간한 『양자군과 결정 기초 입문』은 예일대·하버드대 교재로 채택됐다. 리 수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강 교수는 ‘3차원과 벡터, 무한차원’ 등을 종이에 열심히 그려가며 설명했다.

위당 정인보

●이해가 쉽지 않군요.

 “사실 저도 몇십 년 동안 공부한 건데 쉽게 설명할 방법이…. 미치겠어, 하하. 제가 표현론을 공부하는데 제 성격에 맞아요. 인간은 자기 인생을 어떻게 구현해내느냐가 중요하죠. 표현론도 복잡한 대수적 구조를 알기 쉽고 다양하게 투영시켰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공부하는 것이니.”

●아무튼 저서 중 하나를 외국 유수 대학에서 교재로 쓸 정도면 대단하군요.

 “외국에 가면 제 책으로 공부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좋죠. 근데 화장실에서 그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볼일 보는데 학생들이 저를 알아 보고는. 창피하잖아요, 하하. 교본도 안 배웠나 봐. 화장실에서 경례하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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