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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회 사건,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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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목회(청원경찰친목협의회) 사건이 연평도 정국에 묻혀 잠잠하다. 청목회 사건은 정치인이 정치 자금을 모으는 관행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청원경찰법을 청목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주고 정치자금을 받은 게 화근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의 시시비비는 검찰이 수사하고 법원이 판단할 거다. 하지만 청목회 사건, 그 이전도 문제지만 이후에 흘러가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왜 그들이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는지가 확연히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청목회 사건으로 문제가 된 부분을 수술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개정안에 후원금 계좌로 받은 돈은 로비에 의한 정치자금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후원금 계좌로 받으면 어떤 돈이든 괜찮다는 얘기다. 입법 로비가 가능해진다. 개정안은 또 제3자가 10만원 이하 후원금을 모금해 30일 이내에 명단과 함께 후원회에 전달해도 되도록 허용했다. 이건 청목회 간부들이 정치권에 해왔던 방식이다. 이 같은 기준대로라면 청목회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문제가 될 게 없다. 민주당이 법안을 제출하긴 했지만 이 개정안에는 한나라당도 은근히 찬성하고 있다.

 청목회 사건이 있은 지 얼마되지 않아 그것도 연평도 사태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절에 이 같은 방향으로 법에 꼭 손을 대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연평도 공격 후 사흘째인 지난달 26일 국회의원 세비를 5.1% 인상해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판인데 말이다.

 또 지적해야 할 대목이 있다. 청목회 사건으로 ‘앗 뜨거워라’ 했던 정치권은 로비를 받고 개정해준 법에는 문제가 없는지 반추해 보기보다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만 정신을 쏟았다. 청원경찰법이 개정되면 모든 청원경찰에게 혜택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법이 지난해 12월 개정되면서 혜택을 본 사람이 청원경찰 전체가 아니라 청목회 회원만이었다. 청목회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시·구청 등)에서 근무하는 청원경찰의 모임이다. 그러니까 공공 단체나 국내 주재 외국 기관, 은행 등에서 근무하는 청원경찰 등은 해당이 없다.

 서울 여의도의 한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청원경찰 김모씨는 “사정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직군 분류에서 등급이 떨어졌다는 얘기만 들었다”며 “처우 개선이 필요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씁쓸해했다. 정치권이 정치자금법을 고치기 전에 청원경찰이란 이름으로 소외 받은 이들의 사정도 염려했다면 사정이 어땠을까. 로비를 한 청원경찰에만 혜택이 돌아가니 ‘돈 뿌린 데 법 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지난달 초 검찰이 청목회 로비 의혹 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때 찬반 양론이 있었다. 하지만 여론은 ‘형평성을 잃은 과도한 수사’보다는 ‘정당한 법 집행’이란 의견이 훨씬 많았다. 그건 사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 포함됐지만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반영됐기 때문일 터다. 이 불신은 정치권이 자초한 것이다. 정치권이 청목회 사건, 그 이후의 행태를 계속 보이는 한 손가락질은 멈추지 않을 게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