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마디 말보다 행동” MB 담화 직후 한미연합사 벙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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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담화문 요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한 대응과정에 국민 여러분의 실망이 컸다는 것도 잘 안다. 무고한 우리 국민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이 파괴된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민간인을 향해 군사 공격을 하는 것은 전시에도 엄격히 금지되는 반인륜적 범죄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참고 또 참아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핵 개발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이었다. 더 이상의 인내와 관용은 더 큰 도발만을 키운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분명히 알게 됐다. 그동안 북한 정권을 옹호해 온 사람들도 이제 북의 진면모를 깨닫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북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국제사회도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지금은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일 때다. 정부와 군을 믿고 힘을 모아달라. 하나 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한 뒤 곧바로 한미연합사령부 상황실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이 상황실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앞줄 왼쪽)·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앞줄 오른쪽) 등과 함께 이날 서해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미 연합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에는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29일 오전 10시 춘추관(청와대 기자실) 2층 브리핑룸. 굳은 표정으로 연단 앞에 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사과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오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자리에 섰다” “이번 도발에 대한 대응과정에 국민 여러분의 실망이 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고한 우리 국민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이 파괴된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담화문의 첫 세 문장이 모두 국민을 향한 사과의 메시지였다. 그러곤 북한의 공격으로 희생된 장병과 민간인 네 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명복을 빈다”고 했다. 당초 청와대 내에서조차 “어차피 천안함 사태 때와 같은 뉘앙스일 텐데 구태여 담화를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회의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대통령 담화를 강행한 건 확전 자제 발언 논란과 군의 미숙한 대응으로 돌아선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은 원고 검토 과정에서 일부 참모가 “사과 발언은 꼭 포함돼야 한다”고 건의하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표현으로 사과의 뜻을 전할지에 대해선 전날 밤늦게야 겨우 결론이 났다고 한다. 대응 미숙에 대해선 “국민의 실망감이 컸다”는 우회적인 표현을 썼고, 대신 국가 지도자로서의 총체적 책임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의 사과는 취임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에 따른 촛불시위 때 특별기자회견·대국민담화를 통해 두 차례 사과했고,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던 2009년 11월 TV에 나와 과거 대선 당시의 세종시 원안 추진발언에 대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고 사과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에 넣은 건 “지금은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일 때”라는 대목이다. 사실 이 대통령이 이번 담화문에서 새롭게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북한 도발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이미 6개월 전 천안함 사건 담화에서 충분히 담았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은 오히려 말을 아꼈다. 15분 분량의 담화 초안은 “정서적인 미사여구를 걷어내라. 간결하게 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로 6분50초로 압축됐다. 당초 예정됐던 ‘대국민 특별담화’가 아니라 단순한 ‘대국민 담화’로 형식도 조정됐다. 시종 굳은 표정의 이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한 뒤 늘 해왔던 기자들과의 인사나 악수도 없이 곧바로 퇴장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함께 결단코 물러서지 않겠다” “앞으로 북한의 도발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란 두 마디에 대응의지를 응축시켰다. 그러곤 “말보다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말뿐인 대응”이라며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는 보수층을 겨냥한 메시지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선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은 전시에도 엄밀히 금지되는 반인륜적 범죄” “포탄이 떨어진 불과 10여m 옆은 학생들이 수업하던 곳”이라며 그 잔혹함을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담화를 마치자마자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조지 워싱턴함을 비롯한 미 해군 함정이 아주 신속하게 와 연합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데 대해 고맙다. 한·미 양국군이 훌륭하게 훈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에겐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샤프 사령관은 “억지력을 유지할 뿐 아니라 전투준비 태세도 최상으로 갖추겠다”고 답했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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