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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도발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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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연합국에 아돌프 히틀러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히틀러는 무고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냉혹한 학살자이면서도 달빛을 두려워하고 초조할 땐 새끼손가락을 빠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여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방을 기어 다닌다는 이상한 첩보도 입수됐다.

 당시 미국 정보기관이던 전략사무국(OSS, CIA의 전신)은 나치 독일에 승리하기 위해선 히틀러의 심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정신분석의 권위자인 월터 랑거 박사에게 그 임무를 의뢰했다. 랑거는 히틀러의 가계(家系)와 유년 시절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망원(網員)들을 면담한 뒤 그의 내면을 파헤친 극비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히틀러가 우울증·신경증과 함께 ‘총통’이란 절대 권력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결론은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사이코패스’로 내려졌다. ‘히틀러의 심리적 프로파일’로 명명된 보고서는 68년 극비에서 해제됐다.

 히틀러에겐 ‘메시아 콤플렉스’의 징후가 있었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엄청난 압제로부터 한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줄 것이다. ‘그 사람’이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을 성취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믿었다. 그의 과대망상증은 총통이 된 이후인 37년 11월 당 집회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여러분이 수백만 명 중에서 나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우리 시대의 기적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을 찾아냈다. 이것이 독일의 운명이다.” 자신을 독일의 구세주로 여겼던 것이다.

 히틀러의 병적 증상은 전쟁 광기로 이어졌다. 그는 『두 번째 책』에서 “전쟁은 한 민족이 생존을 위해 투쟁에 사용할 궁극적 무기”라며 경제적 사회적 과제들은 “전쟁 준비에 맞춰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민족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도발(挑發)증후군’에 빠져 있었다. 결국 유럽 전역을 피바다로 만들었지만 나치와 자신의 파멸로 끝났다.

 히틀러의 증상은 상습적 도발증후군에 걸린 북한을 떠올리게 한다. 천안함 폭침도 성에 안 차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저지르면서 걸핏하면 한국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이러고도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동족(同族)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윤리적 뇌(腦)’가 결여된 건 아닌가. 어디선가 김정일의 정신분석을 하고 있다면 그 결과가 궁금하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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