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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K가 울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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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남한 전폭기로 북한 해안포를 응징하는 문제에는 전술적 차원을 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 F-15K는 대당 1000억원이다. 이 전폭기는 남한의 경제성장과 대북(對北) 체제경쟁 승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다. 그래서 F-15K로 보복하는 것은 남한이 모든 자원을 동원해 몇 배로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 도발에 대해 이런 보복은 없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때 한·미는 단호히 응징했지만 결과는 미루나무를 자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미군이 당한 게 아니라면 응징작전은 훨씬 작았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F-15K 폭격’은 남한이 단호한 의지를 단독으로 북한에 보여주는 첫 번째 실천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에 남한의 용기를 과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한 내부적으로는 미망(迷妄)을 폭격하는 것이다. 천안함 외부폭발을 소설이라 하고 유엔에까지 달려가 조국을 훼방했던 미망의 세력, 지레 겁을 먹고 확전에 벌벌 떠는 패배주의, 천안함 북한규탄 결의안에 반대했던 맹북(盲北)주의를 폭격하는 일이다. 전략가 대통령, 전략가 합참의장이라면 오히려 이런 기회를 기다렸어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한민구 합참의장은 하늘이 준 기회를 날려버렸다. 전략과 역사의식 그리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결단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확고한 신념, 강력한 의지 그리고 냉철한 판단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먼저 지도자와 국민은 신념을 가져야 한다. 서해(西海) 국지전이 벌어져도 김정일이 전면전을 감행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만의 하나 전면전이 일어나도 국민이 견뎌주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북한의 장사정포에 서울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장사정포나 특수부대, 생화학탄 같은 건 피해를 줄 뿐이지 승패를 결정하진 못한다. 현대전은 공군력과 공습능력에 달려 있다. 이는 미군의 바그다드 공격에서 증명된 것이다.

 한·미는 개전 3일 내에 평양~원산 이남의 제공권을 장악하도록 되어 있다. 한·미의 공습능력은 가공할 만하다. 미 태평양 함대의 핵잠수함 3척에만 토마호크 미사일이 462기나 실려있다. 이것만 날려도 평양의 김정일·김정은 집무실·숙소, 노동당사, 인민군 사령부를 모두 부술 수 있다. 여기에 F-15, F-16, 일본서 날아오는 F-22 랩터 그리고 항공모함에 순양함·구축함까지 가세하면 평양은 며칠 내에 바그다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폭탄을 가졌다 해도 쓸 수는 없다. 북한정권엔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후세인의 최후를 기억하는 김정일은 모험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할 수 없을 거란 신념으로 임하면 서해의 국지전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공중전과 해전에서 한·미 전력은 압도적이다. F-15K는 200㎞ 떨어진 곳에서 SLAM-ER 유도탄으로 목표물을 때릴 수 있다. 북한에는 이런 수준의 전폭기가 없다. 미그 29는 겨우 한국의 F-16급이다. 그런 미그 29도 20여 대에 불과한데 F-16은 160여 대나 된다.

 대통령과 합참의장은 이런 신념과 판단으로 무장하고 F-15K 폭격을 명령했어야 한다. 국민의 섬마을이 불바다가 됐는데 대체 교전규칙 따위가 뭐란 말인가. F-15K는 국민이 피와 땀과 눈물로 사준 국민의 무기다. 바로 연평도 사태 같은 때에 쓰라고 사준 무기다. 그런데 군은 그런 무기를 비겁과 패배주의란 쇠줄에 묶어 놓았다. 조원건 전 공군작전사령관은 나에게 “모든 걸 종합해볼 때 F-15K로 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합참의장은 역사적인 폭격을 놓쳐버렸다. 흔히들 주먹이 운다고 한다. 지금 대구 공군기지에선 F-15K 45대가 울고 있다. 유약한 지휘관에게 화가 나고 천안함 46인과 연평도 4인이 불쌍해 F-15K가 울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