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마이크가 무섭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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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10면

방송국 가는 길은 멀었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그것은 강남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서 영등포구청역에서 다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오목교역에 내렸는데, 그 역은 심연보다 깊고 오목교역 2번 출구, 그러니까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끝없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마이크 공포 때문이다. 나는 마이크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지고 진땀이 나고 입은 바짝바짝 타고 정신은 혼미해져 횡설수설하는데 지하철을 탈 때부터 입이 마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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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모 작가에게 도착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고 나는 방송국 로비에서 진땀을 닦는다. 로비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모두 연예인이나 PD나 작가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말하고 걸어간다. 행동이나 자세가 부자연스러운 사람은 그 넓은 방송국 로비에 오직 한 사람, 나뿐이다. 다리를 꼬고 앉아도 방송대본을 꺼내 읽는 척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각이 공포증을 심화시킨다. 로비에서 기다리는 고작 10분 동안 나는 두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온다. 여전히 방광은 터질 것 같다.

마침내 스튜디오로 들어선다. 마이크를 비롯한 온갖 음향기기가 설치돼 있는 낯선 공간. 방광 때문인지 방음 때문인지 문을 닫자 스튜디오는 물속처럼 고요하고 먹먹하다. 물속에서 이준원 PD와 최영아 아나운서는 마치 사이렌처럼 내 방송공포증을 반갑게 맞이한다.

나는 말을 못 한다. 친구나 동료처럼 편한 사람과 편한 자리에서 말할 때는 꽤나 신나게 떠드는 편인데 모르는 사람들 앞이나 공식적인 자리에 가면 주눅 들고 긴장해 그만 말문이 막힌다. 할 말은 어디론가 다 달아나고 그나마 남은 말도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목소리는 안으로 기어든다. 어쩌면 내 몸에는 모기의 피가 흐르는지 모른다. 지난여름 그렇게 내 주변에서 앵앵거렸던 그 살찐 모기의 피가.

모기 목소리로 나는 첫인사를 한다. 이제 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안다. 처음으로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은 건 중학생 때였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 잡담한 것을 한 녀석이 몰래 녹음한 것인데, 내용은 분명 내가 말한 것이지만 음색이나 톤은 전혀 달랐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렇게 얇고 경박하다니, 게다가 억양 심한 사투리 말투라니 실로 절망적이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목소리는 깨끗하고 정확한 아나운서의 목소리 앞에서 더 절망적이 된다. 야수는 미녀 옆에서 더 험상궂게 보이는 법. “살다 보면 상대의 좋은 점만 보이는 건 아니잖아요. 미운 점이 보일 때는 어떻게 하나요?” 야수는 미녀가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방광이 부풀어 오른다. “어, 저, 그” 같은 쓸데없는 말만 남발하면서 그다지 소용도 없을 산소를 뇌에 공급하느라 연방 “쓰쓰” 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건 뭐 그것대로…”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이다. 그나마 재치 있는 진행자가 웃으며 “그러면 그건 나중에 들려주세요” 하며 수습해 준다.

녹음이 끝난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간다. 한참을 서 있어도 오줌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녹음 때 대답하지 못했던 말들이 트로이의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처럼 쏟아져 나온다.
방송국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은 더 멀었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우유부단하고 뒤끝 있는 성격이라 평한다. 웃음도 눈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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