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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오토바이 수리공 된 철학박사, 데카르트를 손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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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매튜 크로포드 지음
정희은 옮김, 이음
313쪽, 1만3000원

필로소피』는 그걸 훌쩍 벗어났다. 그래서 신선한데, 지난 주 소개된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과도 다르다. 그게 철학소설이라면, 이건 오토바이 수리공이 쓴 철학에세이다. 실제로 오토바이 센터에서 ‘기름밥’을 먹고 사는 그는 미 버지니아대 고등문화연구소에서도 활동하니 가히 4차원의 철학박사가 맞다.

 렌즈 가공으로 입에 풀칠했다는 스피노자부터 생각나지만, 이 책은 철학 따로 생계 따로가 아니다. 몸과 마음도 붙어있으며 메시지도 당당하다. “몸을 쓰고 손 움직이는 육체노동과 수작업이야말로 현대사회 최선의 삶이다.” 그건 삶에서 나온 통찰인데, 그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펜대 굴릴 때보다 오토바이를 고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때 생각도 훨씬 풍요로워진다. 부품·기계는 물론 주변에 자신을 활짝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다. 자기는 정비에 집중할 때 논리보다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을 앞세운다. 상황과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인데, 그게 바로 세상과 꼭 닮았다. 때문에 육체와 정신 사이를 분리한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야말로 첫 단추를 잘못 꿴 사람이다. 그 이후 사고와 행동 사이 거리가 멀어졌고, 노동의 쇠퇴가 왔으며 인간은 갈수록 멍청해지고 있다. 저자가 볼때 데카르트는 “이성과 도덕 사이를 이간질한 장본인”(285쪽)에 불과하다.

  데카르트가 금과옥조로 떠받든 에고(자아)에 갇혀 살면 결국 바보가 된다는 말도 던진다. 영어의 바보(idiot)는 그리스어 ‘idios’ 즉 혼자 있음에서 나왔다. 반면 지혜를 뜻하는 ‘sophia’는 목수의 손기술 같은 기예(技藝)에서 비롯됐다. 『모터사이클 필로소피』가 교육현장에 쓴소리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학교에 목공· 선반을 갖추고 실용기술을 살뜰히 가르쳐줘야 하는데, 모두 컴퓨터에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요즘 세상이 물질적 실체에서 벗어나 정보사회 특유의 버추얼리즘(virtualism)으로 향하고 있지만, 후기산업사회에도 손기술·실용기술이야말로 좋은 삶, 확실한 수입원이라는 주장은 그리 공허하지 않게 들린다. 자동차·오토바이가 기존의 기계식에서 벗어나 얄팍하고 잔고장 많은 전자부품으로 뒤덮이는 상황에도 그는 분노한다. 실제 40대 중·후반인 저자는 열네 살 때부터 전기기사 노릇을 했다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셈이다.

 복잡한 기술용어도 꽤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이다. 자기가 손을 본 오토바이가 “부우우왕! 부릉 부릉”하며 요란한 엔진음을 쏟아내며 튕겨져 나갈 때 그건 기계가 “오 예!”라며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이라는 설명이 종종 등장한다. 기름밥을 먹어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싱싱한 언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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