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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광저우] 승부차기 생각하다 허망하게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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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4년 만의 금메달에 도전했던 한국 남자축구가 또다시 ‘아시안게임 준결승전 징크스’를 넘지 못하고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경기가 끝난 뒤 공격수 박주영(왼쪽)이 수비수 홍정호를 끌어안고 위로해 주고 있다. [광저우=연합뉴스]


아시안게임은 한국축구의 늪이었다. 홍명보호가 또다시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24년 만의 우승을 목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남자축구 대표팀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3일 광저우 톈허경기장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UAE)와 준결승전에서 0-1로 패했다. 연장전 포함 121분을 리드하고도 마지막 1분에 집중력을 잃어 지긋지긋한 아시안게임 징크스를 털어내지 못했다. 한국은 최근 여섯 차례 아시안게임에서 다섯 차례나 준결승에서 발목을 잡혔다. 한국은 25일 이란과 3, 4위전을 벌인다.

 경기가 승부차기로 넘어갈 듯했던 연장 후반 14분, 선발 골키퍼 김승규(울산) 대신 이범영(부산)이 투입됐다. 승부차기에 강한 이범영은 홍명보 감독의 히든 카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연장 후반 17분 실점을 허용하면서 홍 감독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역습 상황에서 아메드 알리 알라브리에게 결승골을 허용했다. 공격을 하다 차단됐으나 이미 지친 선수들은 수비 가담을 포기했다. 바로 전 상황에서 홍정호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 맥이 확 빠진 상태였다. 선수들의 마음은 이미 승부차기로 가 있었다. 경기 분위기를 몸으로 느낄 틈도 없이 위기를 맞은 이범영은 꼼짝 없이 골을 내주고 말았다. 지난해 이집트 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해 온 홍 감독의 첫 번째 실패였다. 홍 감독은 “골키퍼를 바꾼 건 결과적으로 나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북한을 꺾고 준결승에 오른 UAE의 전력은 만만찮았다. 반면 “경기를 치를수록 좋아지는 팀을 만들겠다”고 했던 홍 감독의 다짐과 달리 우리 선수들의 몸은 무거웠다.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을 치른 뒤 사흘을 쉬었지만 컨디션은 올라오지 않았다. 발이 잘 떨어지지 않자 선수들은 공을 줄 곳을 찾지 못했다. 볼 처리 속도가 더뎌지면서 공격의 예리함은 살아나지 못했다.

 빈약한 골 결정력도 경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문전에서 세밀함이 부족해 좋은 찬스를 잡고도 번번이 골을 놓쳤다. 전반 40분 박주영(모나코)이 수비수 4명을 달고 다니며 조영철(니가타)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줬지만 조영철의 슛은 골문을 크게 벗어났다. 경기 종료 직전 서정진(전북)이 날린 회심의 터닝슛도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연장 전반 5분 박주영은 서정진의 크로스를 뒤꿈치 슛으로 연결했으나 강도가 약했다.

 UAE 골키퍼 알리 카세이프 후사니의 눈부신 선방은 홍명보팀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전반 16분과 32분 김보경(오이타)의 날카로운 중거리슛이 후사니의 방어에 막혔다. 연장 전반 서정진의 슈팅이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향했지만 후사니는 어김없이 걷어냈다. 연장 전반 7분 박주영의 빠른 터닝슛도 후사니의 동물적인 움직임에 막혔다.

 이제는 동메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연장전을 치른 탓에 체력이 문제다. 이란은 이날 오후 7시(한국시간) 90분 만에 경기를 마쳤다. 반면 연장전이 끝난 시각은 오후 10시 반. 더 많이 체력을 소모했지만 회복 시간은 더 짧다.

광저우=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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