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광저우] 이슬아 ‘침’ 투혼 빛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감기로 인한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22일 머리에 침을 꽂은 채 대국하고 있는 이슬아 초단. 바둑팀 주치의인 한의원 원장이 침을 놓아줬다. [광저우=바둑공동취재단]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 혼성페어 경기에서 한국의 박정환(8단)-이슬아(초단) 조가 중국의 셰허(7단)-송용혜(5단) 조를 격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들어간 바둑 종목에서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한국이 차지한 것이다. 또 같이 출전한 최철한-김윤영 조도 대만의 저우쥔쉰-헤이자자 조를 꺾고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바둑의 차세대 선두 주자인 박정환은 17세에 불과하지만 두 살 위의 이슬아 선수를 침착하게 이끌며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초반은 불리하게 흘러갔다. ‘이세돌 킬러’로 유명한 셰허와 조선족 출신인 송용혜는 두텁게 판을 이끌며 철저한 수비로 나왔다. 그러나 힘이 강한 박정환-이슬아 팀은 중반부터 대담한 사석전법으로 판을 휘저으며 공격에 나섰고, 여기서 크게 득점을 올리며 형세는 눈터지는 반 집 승부로 변했다. 냉정한 눈으로 본다면 반 집을 지는 운명이었다. 바로 이 무렵 송용혜가 순번을 어기는 반칙을 범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셰허의 차례에 자기가 두고 만 것이다. 벌점 2집을 공제당하며 승부는 끝났다.

 289수에 종국하여 계가하니 흑을 쥔 한국의 1집 반 승. 응원하던 이세돌 9단은 “이처럼 극적인 승부는 다시 없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고 선수들 뒷바라지에 초췌해진 양재호 감독은 “오늘은 모처럼 잠을 잘 잘 것 같다”며 기뻐했다. 수없는 위기를 극복해냈고 행운도 함께해 준 명승부였다. 박정환과 이슬아는 약속이나 한 듯 “이번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단체전에서도 기어이 금메달을 따내겠다”며 당찬 소감을 밝혔다.

 3일간의 열전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건 박정환은 병역 면제 혜택도 받게 됐다. 예선 2라운드에서 1패를 당해 위기를 맞았던 박정환-이슬아 조는 이후 전승을 거두고 4강에 진출했고 준결승에서 한국의 최철한-김윤영 조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23일부터는 한국의 이창호-이세돌 두 에이스와 조한승-최철한-강동윤-조한승이 출전하는 남자단체전(각국 5명)과 조혜연-이민진-김윤영-이슬아가 출전하는 여자단체전(각국 3명)이 시작된다.

광저우=박치문 바둑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