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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동양방송) 시간여행] 29회 불량만화단속

중앙일보

입력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나쁜 만화를 몰아내자는 불량 만화 화형식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요? TBC 시간여행이 되돌아가 봅니다.

1972년 2월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당시 열세 살이던 국민학교 6학년생이 목을 매 숨졌습니다. 이 어린 학생이 자살한 이유는 만화책에서 본 '부활 흉내'. 만화책에선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며, 현실에서 이를 쫓아해 본 어이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학생이 다니던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이에 충격을 받아 교정에서 불량 만화 화형식을 가졌습니다.

소위 '불량 만화'의 출판 규모는 70년 대 초만 해도, 매달 1200종 150만 권에 이렀습니다. 청소년들의 놀 거리가 달리 없었던 그 시절, 큰 인기를 누렸죠. 게임이나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과 달리, TV도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그때, 청소년들이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건 만화가 거의 유일했으니까요.

폭력적이고 잔인한, 또 성적으로 문란한 저 '불량 만화'들은 동네 곳곳 만화방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만화방 주인들은 만화책을 3번 보면, 만화방에서 TV를 보도록 해주는 '끼워팔기' 상술까지 펼쳤습니다. 불량 만화의 잔인한 정도나 폭력성이 오늘날에 비춰 그리 심각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순진하던' 시절, 이런 '모방 자살'까지 터졌기 때문에 사회에선 심각한 문제로 받아 들였습니다.

난삽한 그림과 조잡한 인쇄로 어린이들에게 시력 장애를 줄 염려까지 있었다네요. 오죽했으면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나서 불량만화 특별 단속을 지시했을까요. 이에 경찰은 서울 시내의 만화방들을 급습해 몇 천 권, 아니 몇 만 권씩 불태우는 화형식을 자주 가졌다고 합니다.

요즘 간혹 뉴스에서 며칠 동안 게임에 몰두하던 사람이 숨졌다는 사건을 볼 때가 있습니다. 게임 중독과 불량 만화 주인공 흉내 내기. 시대는 다르지만 뭔가 안타까운 느낌을 주는 것이 묘하게 닮았네요. TBC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글=이세영 기자, 영상=최영기 PD, 차주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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