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타결 안 되면 한국차 ‘제2의 도요타’ 될지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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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추가협상을 앞두고 청와대와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양국 이익의 균형을 맞춰 어떻게든 연내에 타결짓자니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직후처럼 반발 여론이 불 수 있고, 타결을 계속 미루자니 한·미 관계가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선 요즘 “FTA가 타결되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 제2의 도요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한국차는 미국에서 연간 50만 대가 팔리지만 미국에서 수입되는 차는 3000대 미만”이라며 “한국차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도 미국차에 대해 너무 높은 장벽을 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미국에서 한국차에 대한 반감이 높아져 도요타처럼 곤경에 처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요타가 올 초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로 미국 정부와 언론에 뭇매를 맞은 데엔 일본차에 대한 미국의 견제심리도 일부 작용했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 측의 분석이다.

 청와대의 고민을 더욱 키우고 있는 건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미국 외교계 거물인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최근 “FTA 협정을 타결짓지 못한 건 아시아를 순방한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 논조도 비슷하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를 맛본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외교 실패’라는 멍에까지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미 FTA 타결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일종의 승부수였지만,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론은 그에겐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1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이 예정된 시간보다 45분이나 길어진 것은 이 대통령이 낙담한 오바마 대통령을 위로하는 데 회담 시간(총 75분)의 상당량을 할애했기 때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서울 유치,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등과 관련해 한국 측 입장을 배려했다. 그랬기 때문에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선 “양국 FTA는 경제적 관점이나 협상 논리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동맹관계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양국 정상의 우정에 금이 가면 다른 현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FTA 협상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국내 여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협상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내더라도 ‘미국에 양보한 것 아니냐’는 무조건적인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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