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더 많이 잡았는데 … 도심 출몰은 되레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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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지가 줄고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멧돼지 포획을 늘리기로 했다. 사진은 최근 서울에 나타났던 멧돼지 포획 장면. [중앙포토]

21일 0시47분 서울 삼청동 삼청공원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종로소방서에 접수됐다. 몸무게 100㎏가량의 멧돼지가 두 겹으로 쳐진 공원의 철망 울타리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19 구조대가 급히 현장에 출동하자 놀란 멧돼지는 철망을 머리로 들이받는 등 울타리 바깥 도로로 나가려고 몸부림을 쳤다. 결국 구조대는 새벽 3시17분쯤 마취총 6~7발을 쏴 멧돼지를 잡았다. 소방서 관계자는 “인근 야산에서 먹잇감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철망 사이로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올 들어 전국에서 멧돼지가 도심이나 도로에 출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날 현재 40건으로 이미 지난해의 31건을 뛰어넘었다. 서울에서만 5건이다. 특히 농작물과 인명 피해 예방 명목으로 전국에서 잡는 멧돼지 숫자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멧돼지 포획은 2005년 3081마리에서 지난해엔 두 배 이상인 7715마리나 됐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멧돼지가 더 자주 도심에 나타나는 것은 여름철에 많이 내린 비 탓에 도토리 등 먹이가 부족해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정부 지원으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한 울타리 설치가 늘어나면서 멧돼지가 먹이를 구할 방법이 줄어들어 도심으로 더 많이 내려온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2006년 85억원에서 지난해 53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근본적으로는 산림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이우신 교수는 “멧돼지는 2년 정도 자라면 번식력을 갖는 데다 한 배에 7~13마리나 낳기 때문에 쉽게 불어난다”며 “겨울철 기온마저 높아 사망률이 떨어지면서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환경부는 일단 멧돼지를 더 많이 잡기로 했다. 환경부 최종원 자연자원과장은 “전국적으로 멧돼지가 23만 마리쯤으로 추산되는데 지난해 잡은 7715마리는 전체의 3.3%에 불과해 숫자 조절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달 개설된 수렵장별로 종전에 멧돼지 숫자(추정치)의 30%까지만 잡도록 돼 있던 것을 50% 이내로 높이고 1인당 포획 가능 수도 3마리에서 6마리로 늘렸다. 또 생포용 포획틀을 보급해 피해 농민이 직접 포획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의 부실한 생태조사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부의 야생 멧돼지 서식밀도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00㏊)당 4.6마리에서 지난해 3.7마리로 오히려 줄었다. 도시 주변지역이 아닌 산림지역에 대한 조사만으로 작성된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와 군사보호시설이 많아 수렵이 제한된 서울 외곽지역에서는 2005년에 이미 ㎢당 10마리 수준에 이르렀다는 환경부의 다른 보고서도 있다. 한 전문가는 “실태 파악이 부정확하기 때문에 대책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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