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광저우] 태권도 허준녕, 붕붕 날아 통쾌한 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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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허준녕(左), 이성혜(右)

한국 태권도가 자존심을 지켰다. 대회 첫날 노골드의 수모를 당한 한국 태권도는 18일 금메달 2개를 따내며 반전에 성공했다.

 남자 87㎏ 이상급에서 허준녕(23·삼성에스원)은 광저우 광둥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정이(중국)를 11-4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최중량급인 87㎏ 이상급이 지닌 상징성은 대단하다. 태권도 세계챔피언이나 다름 없다. 이 체급의 강자들이 아시아권에 모두 몰려 있어 아시안게임은 올림픽 수준에 버금간다.

올림픽에서 태권도의 위상이 흔들렸을 때 이 체급의 문대성은 2004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그림 같은 뒤돌려차기로 전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공격에 머리를 가격당한 그리스 선수는 그대로 쓰러진 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차동민(한국가스공사)이 금메달 계보를 이었다.

 기대주들이 차례로 탈락하는 상황에서 한국 태권도를 살린 주인공은 무명에 가까운 허준녕이었다. 특히 큰 기술로 상대를 제압해 태권도의 매력을 중국에 알렸다. 정이와 결승전에서 3점짜리 머리 공격을 두 차례 성공시켜 점수 차를 벌리며 여유 있게 경기를 이끌었다.

 1m88㎝의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외모, 여기에 쾌활한 성격까지. 허준녕은 차세대 태권도 스타의 자질이 충분하다. 그는 준결승전에서 0-7로 뒤지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5-14로 역전했다. 허준녕은 경기 후 “이러다가 군대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제대회에서 그렇게 큰 점수 차를 뒤집긴 처음”이라고 기뻐했다. 2인자의 세월이 길었던 허준녕이 메이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 문제점으로 지적된 전자호구 적응 문제도 그의 큰 기술로 말끔히 해결했다. 허준녕은 “전자호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 공격에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몸통 공격은 전자호구를 통해 자동으로 점수가 올라가는 반면 머리 공격은 판정단이 점수를 매긴다.

금메달을 따낸 순간 그는 어머니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어제 전화를 드렸더니 건강검진에서 심장 검사를 다시 받아봐야 한다는 얘기를 하셨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걱정”이라던 허준녕은 곧바로 한국에 전화를 했다.

 앞선 경기에서는 여자 57㎏급의 이성혜(26·삼성에스원)가 첫 금메달을 신고했다. 결승전에서 세계선수권자 허우위줘(중국)에게 우세승을 거뒀다. 연장전까지 0-0으로 끝난 가운데 4명의 심판 판정은 이성혜의 손을 들어줬다.

 이성혜는 “상대가 장신이라 긴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방어하는 데 중점을 뒀다. 어제 금메달이 없어 부담이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으로 차분하려 애썼다”며 소감을 밝혔다. 여자대표팀의 맏언니인 이성혜는 한국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여자 경량급의 강자 권은경(25·삼성에스원)은 53㎏급 준결승전에서 부상으로 기권패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광저우=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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