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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그리고 대화와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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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방현
사회부문(내셔널) 기자

“밀을 빻으면 밀가루입니다. 쌀가루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밀을 빻았는데 쌀가루가 됐다고 합니다. 요즘 충남이 그렇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만 모여 의사결정하고, 그게 도민의 뜻이고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지난 주말 기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충남 한 기초단체장의 도정(道政)에 대한 평가다. 그는 안희정 지사와 연배가 비슷하다. 행정의 초보인 안 지사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조언도 해왔다. 그러나 이날 기자를 만나자마자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는 ‘편가르기’와 ‘불통(不通)’을 지적했다. 안 지사의 책임을 거론했다.

 그는 최근 충남도의 4대 강(금강) 사업 발표 과정을 예로 들었다. ‘4대 강 사업 재검토 특별위원회’ 위원 24명 가운데 70% 이상은 4대 강 사업 반대론자다. 이들은 8월 이후 두 차례 금강사업홍보관(부여)을 찾았다. 그러나 사업 담당자가 사업 내용을 설명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그들은 미리 내린 결론(반대)만 말하고 돌아갔다. 안 지사는 이들의 활동 결과에 지지를 보냈다. 금강사업을 찬성하는 시장·군수 인터뷰를 보도한 언론에는 반감을 표시했다. “도지사와 시장·군수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데 (자신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안 지사가 취임 이후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대화’와 ‘소통’ ‘민주주의’다. 도정 구호(口號)도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으로 정했다. 민주주의의 큰 틀 속에서 도민이 행복한 충남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그는 대화와 소통의 모습을 자주 보였다. 취임 이후 도의 직제표(職制表) 맨 위에 ‘도민’을 앉혔다. 정책의 제1 수요자인 도민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충남판 ‘타운 홀 미팅’(10월 20일)도 시도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었다. 정책 결정권자가 지역 주민을 초대해 정책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다. 미국식 참여민주주의의 대표적인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안 지사는 소통의 수단으로 트위터를 활용한다. 세계대백제전(9월 18일∼10월 17일) 등 도정의 주요 현안을 트위터로 설명한다. 도민들로부터 아이디어도 얻는다.

 하지만 그의 ‘소통 철학’이 갑자기 실종될 때가 있다. 4대 강 사업 등 정치적인 이슈에서 특히 그렇다. 소신을 너무 앞세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의 철학에 공감하는 일부 측근의 의사만 반영한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요즘 안 지사가 관심 있게 읽은 책은 『공감의 시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제레미 리프킨 교수의 저서다. 지구촌 생존 방식이 적자생존에서 공감생존으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감’은 심리학에서 감정이입(感情移入)으로 설명한다. 남의 감정에 “나도 그렇다”고 느끼려면 그것이 나에게 옮겨와야 된다. ‘공감’은 그의 좌우명인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맥을 같이한다. ‘역지사지’야말로 대화와 소통의 출발점이다. 안희정 지사는 최근 도청 직원과의 월례 조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논리는 사람의 좌절, 분노, 기쁨, 행복, 즐거움, 짜증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말 자체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다. 문제는 실천이다.

김방현 사회부문(내셔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