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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경 평가 공개 ‘깨끗한 인사’ 확립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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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몇 년 전만 해도 관용어처럼 쓰이던 말이 있다. ‘서울대 교수는 철밥통’. 한 번 임용되면 대부분 정년(만 65세)을 보장받는 정교수가 된다는 의미에서다. 선배 교수라는 연공서열, 누구 교수 제자라는 파벌주의, 우리 가족(출신 대학)이라는 온정주의가 대학 사회의 뿌리 깊은 관행이었다.

 기자가 서울대를 출입하던 3년 전 이런 관행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외부 석학을 평가위원으로 영입하고, 형식적 절차였던 인사위원회의 심사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정교수 승진을 신청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탈락하고 30대 교수 4명이 정년 보장을 받았다. 교수 사회의 충격은 컸다. 국가석학을 지낸 서울대의 한 교수는 “개교 이래 최대 사건”이라고 말했다.

 당시 개혁의 포인트는 ‘투명성 확보’였다. 밀실이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개방성. 이에 대해 교수들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2010년 11월, 경찰청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 인사 개혁을 추진한 고위 관계자는 “개방성이야말로 경찰이 요구받는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승진 인사를 일주일 앞두고 경찰청이 업무평가 상위 30%의 실명과 등수를 공개했다. 인사를 앞두고 공개된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졌을 때의 당혹감.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모든 이들은 이 충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개 후 여러 경찰관과 통화했다. “검증 기간이 짧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좋은 보직에 있어야 높은 성적을 받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명단에 오른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결국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2만6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47.8%가 금품·향응을 제공하지 않으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했다. “누구 총경은 ‘백’이 세다, 누구는 돈으로 발랐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고도 했다.

 국민의 경찰에 대한 불신은 ‘너희도 깨끗하지 않으면서 누굴 잡는가’라는 냉소에서 나온다.

범법자를 잡는 기관에 이런 평가는 치명적이다. 지금껏 경찰은 이런 치명적 결함에 대해 방관해 왔다. 개혁이 필요하지만 지금 하기엔 이르고 무서웠다.

 경찰 조직은 대학과 다르다. 개인기보다 조직력이 중요하다. 성과 평가가 조직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과도한 성과주의로 상사가 하급자를 닦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대학의 예를 든 건 맥락이 통하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개혁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 평가의 투명성은 어느새 상식이 됐고 그 수혜는 학생, 더 나아가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경찰 개혁도 마찬가지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