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사나이, 사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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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10면

“제가 지금 어디에 와 있을까요?”
일요일 오후 나는 사토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있는 위치를 맞혀보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웃음이 잔뜩 묻어 있다. 그럴 때는 그런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잠시 고민하는 척 뜸을 들인 후 틀릴 게 뻔한 답이라도 몇 가지 말해야 한다. 그게 예의고 매너다. 그런데도 나는 무심하게 대꾸한다. “모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멋없는 사람이다, 나란 사람.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마 '도연초'를 쓴 요시다 겐코라면 “이렇게 말하는 멋없는 사람과는 유감스럽지만 더 이상 통화할 수 없습니다. 정말 실망스럽군요”라며 전화를 끊었겠지만 다행히 사토는 인내심이 강했다. “여기 나루토입니다.” 사토는 십 년 전 내가 일본에 머무를 때 일했던 식당을 찾아간 것이다.

만일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사토가 한 시절 한국에 머물 무렵 몇 개월 동안 일했던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랬다면 천금 같은 일요일, 가족을 모두 데리고 차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 찾아갈 엄두가 났을까? 가서 갈비로 점심을 먹으며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아직도 사토를 기억하는 손님들에게 사토의 근황을 이야기해주며 즐거워했을까? 사토에게 보내주기 위해 식당의 여기저기를 찍고, 식당 앞에서 가족 기념사진까지 촬영했을까? 식당 사장이나 단골손님들로부터 사토에 대한 칭찬이라도 들으면 마치 내가 칭찬받은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을까?

나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나라면 금쪽같은 일요일 네 시간을 길바닥 위에 버리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곳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를 사토에게 들었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바보 같은 사토는 도쿄에서 가족을 데리고 지바현의 나루토까지 갔다. 단지 거기서 내가 일한 적이 있다는 말만 듣고 일요일 하루를 몽땅 투자해서. 사토는 식당 사장부터 동료, 단골손님까지 바꿔준다. ‘전화비 많이 나올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사토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들과 반가운 안부를 주고받는다.

사토는 회사 일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이다.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저런 기회로 알게 된 사이다. 수차례 업무 미팅에서 받은 사토에 대한 인상은 언어 표현력이 뛰어나고 머리도 좋으며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사토는 나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고 나보다 더 한국 사람처럼 생겼으니 친화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마케팅 담당자였지만 곧 매니저가 되고 부서장이 되고 임원이 되었다. 지금은 긴자, 신주쿠, 요코하마, 오미야, 지바 등에 다섯 개 지사를 운영하는 어엿한 회사의 대표다.
그 후 일본 출장 때 나는 사토를 만났다.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시 내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사실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며. 뜻밖에 사토의 반응이 심드렁했다.

“거기 고기 맛은 괜찮은데 값이 너무 비싸더군요. 어떻게 도쿄보다 더 비싸죠?”
그러고 보니 전에 사토에게 식당 이야기를 해줄 때 맛에 대해서만 말했지 가격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식당 사장은 아무리 친구나 친척이 멀리서 찾아와도 깎아주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우유부단하고 뒤끝 있는 성격이라 평한다. 웃음도 눈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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