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엔 ‘SSM 입점’ 사실상 어렵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국회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10일 통과시키자 각 지자체들이 일제히 관련 조례 제정에 나섰다. 지역 내 SSM(기업형 수퍼마켓) 입점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 주류다. 그러나 이 같은 조례는 모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관련기사 보러가기

 가장 발 빠른 곳은 광주광역시다. 광주시의회는 11일 본회의를 열어 재래시장과 전통상점가의 경계 500m 이내에는 매장 면적 500㎡ 이상의 SSM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 및 조정 조례안’을 의결했다.

 조례에 따르면 SSM이 문을 열려면 30일 전까지 개설 장소·시기·규모·사업자 등을 담은 사업개설계획서를 관할 구청장이나 시장에게 내야 한다. 또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정된 광주시내 18개 전통시장과 자동차거리·나무전거리·전자거리·건축자재거리·공구거리 등 5개 상점가의 경계로부터 500m 내의 범위에서 지정되는 전통상업보존구역에는 대형마트와 SSM을 개설할 수 없도록 했다. 대기업 유통사업자의 경우 500㎡ 미만이라도 해당 전통시장상인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형 유통업자가 주거지역·녹지지역 안에서 대형마트나 SSM을 개설할 때는 각 구청에 설치되는 등록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대형마트 신규 입점을 사실상 막겠다는 취지다.

 현재는 대형 유통업자가 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으면 바로 공사에 들어가 점포를 개설할 수 있게 돼 있다. 심의위원회는 점포 주변지역의 상권에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주거환경을 해치는 경우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럴 경우 자치구 유통분쟁조정위원회나 광주시 유통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조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조례의 상위법에 해당하는 유통산업발전법과의 충돌 가능성 때문이다. 유통법은 재래시장(전통상점가) 반경 500m 내 구간을 전통상업보전구역으로 정해 SSM 직영점·가맹점(체인점) 진입을 제한했으나 매장 면적 제한은 물론 등록심의위원회 설치와 관련된 세부 규정은 없다.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광주시 박해구 경제정책과장은 “유통법 개정안이 큰 틀에서 규제조항을 마련했다면 조례는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이를 구체화·세분화시킨 개념이다”며 “상위법과 충돌이 없도록 시행규칙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지역에 영업 중인 대형 유통업체는 백화점 3곳, SSM 15곳, 대형마트 13곳 등 모두 31곳이며, 입점을 준비 중인 SSM이 5곳이다.

 구길선 변호사는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 하는데, 조례 제정도 원칙적으로 법에서 위임한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면서 “대기업 유통사업자의 경우 500㎡ 미만이라도 상인회의 동의를 받게 하거나 등록심의위원회 설치 등은 법에서 제한하는 것보다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동형 유통소비계장은 “법적으로 일부 저촉되는 규정이 있으나 조례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지자체 규제 움직임 확산=대형마트·SSM 입점을 규제하는 조례를 추진 중인 광역 지자체는 서울과 대구 등 모두 13곳이다. 이 중 충남 등 8곳은 시·군·구 단위로 추진 중이다. 광주와 대전·제주는 이미 관련 조례가 제정돼 있다. 서울시는 이미 ‘유통업 상생협력 및 유통분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문수(성북2·민주) 시의원은 “유통법 개정안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례안을 준비 중이다”며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 공포에 맞춰 서울시 조례도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5일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는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 여부에 따라 내년 초 새로운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인 곳도 있다. 충북도의회 유지영 전문위원은 “도의회 차원에서 입점을 추진 중인 대기업에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보냈다”면서 “상위법이 통과된 만큼 지방의회에서도 그 실정에 맞는 조례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대전시와 제주도의 경우 대형마트와 중소유통업 및 소상공인 간 상생 협력관계를 다져 유통업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으나 유통법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조례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현 조례안에 SSM을 직접 제재 또는 규제하는 내용이 없어 실효를 거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광주=유지호 기자, [전국종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