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가락에 땀 나도록 바둑 뒀습니다 … 금 따려고 대학도 포기 했고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바둑이 아저씨들에게만 인기가 있다고요? 이제 곧 바뀔 겁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이슬아(19·초단)가 발끈했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 바둑을 젊은 사람들도 즐기는 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차분한 바둑과 어울리지 않는 활달하고 당찬 소녀 이슬아. 9일 서울 홍익동의 한국기원 국가대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얼짱 바둑기사’로 화제가 된 이슬아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여자 바둑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정시종 기자]

 ◆“아빠 친구들께는 져 줘요”=이슬아는 8일 아시안게임 선수단 결단식에서 수영 박태환 선수와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돼 ‘얼짱 바둑기사’로 화제를 모았다. 예쁜 얼굴만큼 실력도 뛰어났다. 이슬아는 9세 때 아버지(아마 3단)의 권유로 처음 바둑돌을 잡았다. 그 후로 승부사가 됐다. 바둑돌의 오묘한 조화로 이기고 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지는 게 너무 싫어 손에 땀이 나도록 연습을 했다. 왜 졌는지 알 때까지 복기를 했다. 결국 바둑 입문 8년 만인 2007년 4월 프로기사 입단에 성공했다. 그해 10월 중국에서 열린 정관장배 세계여자최강전 단체전 우승에 힘을 보탰다.

 프로기사가 됐지만 생활은 달라질 게 없었다. 친구들과 깔깔대며 햄버거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갔다. 머릿속엔 온통 바둑 생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올해 아시안게임과 바둑 공부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개인 시간이 부쩍 늘었다. 대학생 친구들이 학교에 갈 시간에 그는 기원에 간다. 오전 9시부터 바둑 공부를 하고, 오후 6시쯤 집으로 가 ‘혼자 놀기’에 열중한다. 요즘은 피아노와 기타에 푹 빠졌다. 그는 “음악이 유일한 제 취미 생활이에요. 요즘 연주를 통 못 했는데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다시 시작해야죠”라며 깔깔 웃었다. 아직까지는 용돈 수준이지만 대회로 번 상금은 모두 적금에 붓는다. 가끔 아버지 친구들이 도전장을 내기도 한다. 6~9점 정도 깔고 대국을 하지만 이슬아의 상대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들이라 일부러 져 준다.

 ◆‘얼짱’ 부담은 안 돼=하루아침에 ‘얼짱 바둑기사’가 됐지만 큰 부담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슬아는 “여자 바둑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며 즐거워했다. 그는 “인터넷에 제 사진이 떴다고 친구들 전화가 오더라고요. 실감은 안 나지만 기분은 좋아요. 원래 로션도 안 바르지만 오늘은 사진을 위해 살짝 화장품을 발랐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바둑 이야기가 나오면 사뭇 진지해졌다.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여자 바둑에 대한 걱정이 컸다. 바둑대회는 남녀 똑같은 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남자 기사들을 상대로 승리해야 성적을 낼 수 있다. 여자 기사만 참가하는 대회가 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상금 규모도 남자의 10%밖에 안 된다. 이슬아가 아시안게임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자 바둑을 부흥시켜 인기 스포츠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이슬아는 “젊은 여자 기사들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바둑이 가지고 있는 ‘구식’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혼성 파트너와 호흡이 중요=바둑은 이번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남녀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 등 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이슬아는 여자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에 출전한다.

 혼성 단체전 방식이 특이하다. 두 기사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번갈아 바둑돌을 놓아야 한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이슬아는 박정환(18·8단)과 2개월 전부터 파트너가 돼 훈련을 하고 있다. 국가대표 자체 평가전을 통해 짝이 결정됐다. 처음에는 어색해 바둑 두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같이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대화도 자주 하고 모르는 건 스스럼없이 물어보며 토론을 했다. “제가 정환이보다 실력이 떨어지니 의지를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친하게 지내는 게 우선이었어요. 2개월 동안 밥도 같이 먹고 합숙도 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처럼 가까워졌어요.”

 이슬아는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됐으니 바둑기사 이전에 선수죠. 두뇌 스포츠인 바둑의 매력을 알리고 금메달도 꼭 딸 겁니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글=김환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이슬아는 …

▶생년월일 : 1991년 11월 20일

▶학력 : 초당초-충암중-세명고

▶프로기사 입단 : 2007년 4월

▶장점 : 공격력

▶단점 : 끈기

▶취미 : 피아노·기타 연주

▶지금 하고 싶은 것 : 드라이브

▶미니홈피 문구 : 본능적인 금메달

▶미니홈피 노래 : 본능적으로(강승윤)

▶좋아하는 음식 : 생선회

▶존경하는 바둑기사 : 이세돌 9단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 박태환·이용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