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대 교수 연구비 유용 파문 확산 "거의 모든 대학에 만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대 공대 교수의 연구비 유용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본지 보도가 나가자 각 대학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이나 졸업생들은 27일 이 같은 비리가 거의 모든 대학에 만연된 일반적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비리를 알면서도 진로 문제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 침묵해 왔다고 말했다.

◆ 각종 편법 동원=학생들에 따르면 가장 보편적인 연구비 유용은 교수들이 대학본부 연구처에서 학생 명의 통장으로 입금한 급여를 다른 용도로 쓰는 방식이다. 교수가 아예 학생 통장과 도장을 직접 관리하기도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교수들은 "연구 기자재를 사려고 모으는 돈"이라며 둘러댄다고 한다.

서울의 한 공대 대학원 박사과정 이모(27)씨는 "지난 3년간 월 100만원 정도의 프로젝트 연구비 중 실제 받은 돈은 47만원 정도"라며 "교수들이 학생 급여 통장을 일종의 차명계좌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체로부터 공짜로 지원받은 연구 기자재에 대해 가짜 세금계산서를 요구하는 수법도 동원된다. 검찰에 고발된 서울대 C 교수의 경우 부패방지위원회 조사 결과 이 같은 방법으로 4600여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사용할 돈을 기업에 '기자재 구입' 등의 명목으로 청구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학생들의 지적이다.

◆ 교수 영향력에 반발도 못해=고려대의 한 대학원생은 "유명 대학 교수일수록 그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눈 밖에 나면 진로가 막힌다"고 털어놓았다.

3년 전 서울대 공대의 한 연구실에서는 교수의 연구비 전용에 학생들이 집단 항명하기도 했으나 결국 단과대 학장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성균관대의 한 박사과정 졸업생은 "학교 홈페이지에 모 교수의 연구비 횡령 내용을 올려 많은 학생의 공감을 산 적이 있다"면서 "그러나 논문 자격시험에서 불이익이 두려워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비리 교수들에 대한 학교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지난해 고려대 이모(44) 교수는 정부가 지원한 연구원들의 인건비 등 3억7000여만원을 횡령했지만 법원은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학문 발달에 기여한 점을 참작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학교 역시 이 교수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대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하는 한 학생은 "검찰 조사를 받아도 학교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공개적으로 비리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며 인터뷰를 피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들이 학생들의 연구 보조 인건비를 착복하는 것은 제도가 아닌 도덕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는 이날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자체 조사를 거쳐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해당 교수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백일현.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