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백지신탁 공직자윤리법에 넣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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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공직자윤리법을 바짝 강화할 기세다. 당 지지율을 올리려면 열린우리당보다 더 개혁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배경이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27일 경실련 대표단과 한 간담회에서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포함해 강화된 내용의 공직자윤리법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지 겨우 하루 만이다.

이날 오전 경실련 김완배 상임집행위원장(서울대 교수), 김상겸 시민입법위원장(동국대 교수) 등이 당초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왜 뺐느냐고 따졌기 때문이다.

강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부동산도 신탁 대상에 넣자고 주장했지만 열린우리당이 자꾸 주식만 일단 먼저 해보자고 맞서 100% 만족한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부동산 백지신탁을 자꾸 요구하니까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 '정말 하자는 거냐'고 놀라고 있다"며 "평소 개혁을 말하던 사람들이 막상 개혁을 하자고 하면 '왜 하려고 하느냐'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국민에게 점수를 얻기 위한 '보여 주기'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경실련 박병옥 사무총장은 "국민이 볼 땐 공직자윤리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니까 정치권이 아주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백지신탁제를 도입해 비난여론만 피해 나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 원내대표는 "부동산 백지신탁에 대한 당의 입장을 매일 같이 언론에 밝혀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아 아쉽다"며 "새로 제출할 공직자윤리법엔 부동산 백지신탁을 비롯해 재산형성 과정 소명 의무화, 신탁 대상에 선물.옵션 추가, 백지신탁대상 공직자 확대 등의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명색이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보수 정당인데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게 뻔한 부동산 백지신탁 문제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 행자위는 5월 2일 공직자윤리법 개정 공청회를 열어 부동산 백지신탁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은 일단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을 먼저 시행해 보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추후에 개선 논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자꾸 여론을 등에 업고 공직자윤리법 재개정에 압박을 가할 경우 여당도 '개혁 명분'에 뒤지지 않기 위해 생각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정말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우리도 끝까지 반대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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