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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부실 기업, 처벌보다 새출발 유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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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회계부실로 인한 폐해를 절감하고 국제기준에 따른 기업 회계기준 적용, 증권집단소송 및 내부 회계관리의 법제화 등 회계의 투명성을 위한 일련의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제도를 수용할 시스템과 조직 등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증권집단소송의 법제화는 대응 능력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는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도입되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행히 자산 2조원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시행을 연기하고,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한편, 과거 오류 수정에 대해서도 감독 당국이 감리를 실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기업이 과거 경영부담을 털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과거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기업의 분식회계는 처벌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과거 회계오류에 대해 2년에 걸쳐 해소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감독 당국도 기업이 과거 회계오류를 스스로 수정하는 경우 감리를 일시적으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한 것이다.

회계의 연속성으로 인해 기업이 과거 분식회계를 단기간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법적 소송으로 진전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해당기업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당국의 외감규정 개정은 기업 스스로 과거 분식회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퇴로를 만들어 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외부감사법과 증권집단소송법의 궁극적 목적인 건전한 기업 발전을 통한 투자자 등 이해 관계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이번 당국의 조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투자자 등의 이익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감리를 일시 유보하는 조치는 집단소송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회계투명성 검증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기업들은 집단소송법 개정 이전에는 과거 분식회계 해소를 위한 구체적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분식회계에 대한 파장만 우려해 시간만 보냈지, 구체적 준비나 대응은 미흡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 감리 유보로 인한 일부 부작용도 생각할 수 있으나 과거 분식회계의 해소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준비가 덜된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외감 규정의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의 주권 및 코스닥 상장법인 이외의 기업도 감리유보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유예 기간이 주어진 데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욕심을 더 부린다면 유예 기간이 아직도 중소기업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현재 집단소송법의 대상인 분식회계의 개념 자체가 명확히 확립되지 못해 분식의 범위 및 개념 정립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식회계에 대한 감리유예가 없다면 집단소송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많은 기업에서 혼란만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감리유보 조치는 과거 잘못된 재무정보를 수정하도록 촉진하고 미비된 기준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결국은 투자자 보호를 통한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 및 국익 증진이 최종 목적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생산의 최전선에서 땀흘려 노력하는 기업들이 과거 분식회계라는 족쇄에 걸려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국익에 커다란 손상을 입히지나 않을지 냉철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도 이 기회에 회계투명성을 조기에 확보, 회계부실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지종 중소기협중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