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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도, 천성산 도롱뇽도 그 난리를 쳤건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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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열흘 전쯤 새벽 산책길. 한 부부가 이동시장 물건진열을 위해 트럭에서 배추와 과일박스를 내려놓으면서 하는 대화다.

 “배추는 뒤쪽에 놓지.”

 “반값에라도 오늘 다 팔아야 하는데….”

 호들갑스럽게 ‘배추전쟁’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온 국민이 배추 패닉에 빠졌던 게 언제였던가 싶다. 관계기관은 국민들의 성화에 수입을 서둘렀고 ‘효자’ 노릇을 할 줄 알았던 중국산 배추는 도착하자마자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그 와중에 4대 강 사업 때문에 배추값이 올랐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떨어지는 배추값을 어떻게 설명할까 .

 최근 중앙일보에 게재된 ‘올봄 천성산엔 도롱뇽 천지였다’라는 르포 기사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이었다.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 도롱뇽이 몰살한다는 이유로 공사가 3년간 중단됐었다. 그러나 최근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천성산 터널 주변에는 도롱뇽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엄청난 사회적 파장에 비하면 그 결말이 당혹스럽다. 당사자인 도롱뇽은 괜찮다는데 공연히 사람이 들쑤신 형세가 아닌가?

 여론이 들끓을 때 세운 정책이나 사업은 포퓰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익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에서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면 국민여론이 악화된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면 정책이 중심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통상 여론의 비난이 최고조에 달할 때 정책대안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수습국면으로 접어든 경우가 많다. 대안 마련에 시간이 걸리고, 예산확보가 늦어져 적시에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시장경제는 사이클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런데 경제정책의 시차(policy-lag)는 시장사이클의 시차(time-lag)보다 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책시차가 길면 길수록 시장에 교란을 일으키기 쉽다. 시장의 사이클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면 정책효과가 상쇄되거나 반감된다. 문제의 원인이 인위적인 데 있지 않다면 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국제시세가 실시간으로 변동되는 원자재 비축사업도 그렇다. 최근 희소금속 비축여론이 비등하고 있고, 비축의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희소금속은 공급만 희소한 것이 아니라 수요도 희소하고, 대체자원 기술개발이 계속되기 때문에 가격하락의 위험도 큰 상품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원자재 파동 때 여론에 밀려 국가가 비축에 나서려면 가격이 먼저 폭등하고, 정작 예산을 확보해 원자재를 사면 상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 대책도, 출산 억제정책도 마찬가지다. 가격폭등 비난에 밀려 대규모 공급계획을 발표하곤 한다. 그런데 실제 새 아파트가 공급되려면 5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공급계획을 발표하더라도 가격이 곧바로 안정되지 않는다. 막상 입주시점이 되면 시장의 가격하락 커브와 맞물려 가격 폭락과 미분양 사태가 나타난다. 후유증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수요확대 여론이 비등하게 된다.

 정책은 문제제기→원인진단→대응방안 마련이라는 3단계 과정을 거쳐 수립된다. 여론은 정책수립에 실마리를 제공하지만, 포퓰리즘에 휘둘리면 원인진단 자체가 객관성을 잃게 된다. 여론에 깊이 노출된 정책은 앞의 3단계에서 더 나아가, 사후에 그 성과를 평가하고 환류시키는 4단계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평가와 환류과정이 정착되면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이 줄어들고, 책임 있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노대래 조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