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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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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때에 나는 여러 학교 연합 시위대의 틈에 끼어 국회의사당이던 시청 앞의 부민관 계단 아래 연좌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읽고 일부가 '청와대로 가자!'는 절규와 함께 광화문 쪽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저지선은 처음에 조선일보와 국제극장 사이에 있었는데 학생과 시민들까지 가세한 시위대가 밀어붙이자 광화문 네거리로 밀렸고 최루탄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보도 블록을 엎어 깨어 던지면서 광화문 네거리를 돌파했다.

지금은 광화문이 새로 섰지만 그때에는 일제 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이 정면에 서있는 바로 그 길은 이중 삼중의 철조망과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고 작업복 차림에 최루탄 발사기와 곤봉을 소지한 경찰 병력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맨 뒤쪽에는 그들이 타고 왔던 군용트럭이 마치 마지막 방어벽처럼 일열로 줄지어 있었다.

시민들은 최루탄이 날아오면 얼른 집어 던지기도 하면서 돌팔매를 날리며 전면으로 그리고 좌우 측방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나는 우측의 돌파를 시도한 시위대 무리에 끼어 있었는데 드디어 그쪽이 뚫리면서 거대한 시위대의 무리가 중앙청 오른쪽에 돌출해 있는 경기도청의 뒷마당으로(지금은 공원 부지) 진입해버렸다. 시위대가 마당에서부터 유리창을 깨면서 진입하자 직원들이 모두들 피해 달아나고 시위대는 끊임없이 도청 건물을 지나 진압경찰의 배후로 몰려나갔다. 저지선이 일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면에서 정체 중이던 시위대가 철조망을 치우고 바리케이트를 들어내면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저지선은 황급히 철수해서 청와대 쪽의 적선동으로 들어서는 비좁은 경복궁 뒷담길만 사수하고 있었다. 좁은 길목에 최루탄 가스가 가득차 있었다. 밀고 밀리는 일이 되풀이 되다가 시위대의 일부가 군용트럭을 몰고 시내의 각 방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4.19 때처럼 시내의 곳곳에다 시위를 아지프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서투른 운전 때문에 차량들은 전복되기도 했고 남의 집이나 가게를 들이박고 멈춘 곳도 있었다. 우리는 차에 타고 단식 중인 문리대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차량 행진을 하고 나서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학생과 시민들이 화물칸에서 운전석의 지붕을 두드리며 어디로 가자고 아우성을 치면 차는 그쪽 방향으로 달렸다. 천천히, 정지, 모두들 목소리를 합쳐서 외치면 차가 그대로 했고 개중에는 운전수가 도중에 내려버려서 화물칸에 탄 사람이나 행인들 중에 누구 운전할 줄 아느냐고 외치곤 했다.

그러면 꼭 한 두 사람씩은 군대에서 해봤다며 나서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용산역 쯤에서 차가 고장이었는지 기름이 떨어졌는지 멈춰버렸는데, 이미 날도 어두워졌고 시위하던 사람들도 배고프고 지쳐서 모두 흩어져 갔는데 전차가 운행 정지 중이라 한강 인도교를 걸어서 건너갔다.

다리를 거의 건너 입구에 이르렀는데 앞에 바리케이트가 보이고 헌병과 경찰들이 비좁은 출구만 남기고 자동차와 행인을 검문 중이었다. 시민증 보여 달라는 말에 내가 학생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대뜸 저쪽에 서라고 말했다. 나와 몇 사람이 그쪽에 서니 그들은 우리에게 앉았다 일어섰다를 몇 번 시킨 뒤에 바로 입구에 있는 파출소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들은 가방이며 소지품을 검사하고 굴욕외교 반대 성명서가 찍힌 유인물도 찾아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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