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런 게 ‘서남표식 대학개혁’ 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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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KAIST는 대학개혁의 상징이다. 교수들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하고 연구실적이 부진한 교수를 재임용(再任用)에서 탈락시키는 등 ‘철밥통’ 소리를 들어온 교수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심층면접 위주의 신입생 전형방법을 도입해 점수로만 줄 세우는 입시 풍토를 깨는 데도 앞장섰다. 그 중심에는 서남표 총장이 있다. 그러나 최근 KAIST가 강의도 하지 않은 비전임 교수에게 매년 고액 연봉을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 총장의 개혁이 빛 바랠 처지다. 2008년부터 올 10월까지 강의를 전혀 하지 않은 초빙교수나 전문교수 65명에게 22억6000여만원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전직 부총리와 장관들도 들어 있다고 한다. 서 총장과 KAIST는 국민 세금으로 인맥 관리를 한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부총리·장관을 포함한 외부 전문가들의 지식과 경륜을 대학 교육에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교수로 채용해 놓고 수업은 전혀 안 시키면서 한 해 수천만원씩 주는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KAIST는 해당 교수들이 수업은 하지 않았지만 정책 자문이나 연구지도, 비정기 특별강연 등에 대한 수당으로 돈을 줬다고 해명하지만 군색(窘塞)해 보인다. 그러기엔 지급한 돈의 액수가 과도할뿐더러 자문의 경우 교수 초빙이 아니라 자문 계약을 하고 자문료를 주는 방식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로비성 운운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성격의 KAIST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거기에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평생 모은 재산을 희사(喜捨)한 기부자들의 기부금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KAIST가 대학 운영을 하면서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국민을 얕보고 기부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는 거와 다를 바 없다. 서 총장과 KAIST는 비전임 교수 운영방식을 전면 손질해 국민과 기부자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도 KAIST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위법·부당행위 여부를 가려내고, 출연금 축소 등 상응하는 제재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