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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간 7억 명이 숨죽였다 … 이 순간을 보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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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프랑스 출신의 기수 제럴드 모세가 멜버른컵 경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경주마 ‘아메리케인(미국산 6세마)’ 위에서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모세는 24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위에 오르며 우승 상금 40억원을 거머쥐었다. [멜버른 AP=연합뉴스]

선진국에서 경마는 음습한 도박이 아니다. 모두가 즐기는 축제다. 특히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멜버른컵 경마대회는 15만 명의 입장객과 호주 국민, 그리고 전 세계 7억 명의 시청자가 열광하는 세계 최고(最古) 경마 축제다. 중앙일보 기자가 호주 멜버른을 찾아 흥분과 열기의 현장을 취재했다.

‘전 세계 경마팬이 숨죽인 10분’.

세계 최고 경마축제로 꼽히는 ‘에미레이트 멜버른컵 경마대회’(이하 멜버른컵)가 2일 오후 3시(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시 근교 플레밍턴 경마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멜버른컵을 지켜보기 위해 경마장에는 1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멜버른컵의 전통대로 남자는 정장 차림에 노란 장미꽃을 왼쪽 가슴에 달았고, 여자들은 저마다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 경주 5시간 전=오전 8시30분 입장이 시작되자 해외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호주 전역에서 몰려든 관객들이 속속 입장했다. 관람석은 물론 경주로 앞의 장미정원을 가득 메웠다. 가족·친구 및 청춘 남녀들은 집에서 준비해 온 텐트를 치거나 자리를 깔고 레이스를 기다렸다. 입장 2시간 만에 플레밍턴 경마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람객이 넘쳐났다. 경마장 안에서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펼쳐져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경주 3시간 전=관람석 옆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베스트 드레서 선발대회’가 시작됐다. 멜버른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 행사에는 600명에 가까운 참가자 중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여자 관객들이 화려한 모자와 의상을 뽐냈다. 이 중 30여 명이 결선에 진출, 최종 우승자를 가렸다. 우승자에게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제공하는 고급 오픈카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 경주 2시간 전=전날 예보됐던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플레밍턴 경마장을 가득 메운 15만 관객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우산을 펼쳐 든 채 멜버른컵에 앞서 열린 일반 경주를 지켜봤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와 샴페인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 경주 1시간 전=이날 열린 10개 경주 중 일곱 번째 경주로 펼쳐진 멜버른컵을 한 시간 앞두고 식전행사가 펼쳐졌다. 경주마 및 기수 소개가 이어졌다. 경주마가 소개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특히 장내 아나운서가 이날 우승 기대감이 가장 높았던 소유싱크(SO YOU THINK·뉴질랜드산 4세마)와 지난해 우승마로 2연패 기대감이 컸던 쇼킹(SHOCKING·호주산 5세마)을 소개할 때는 거대한 함성이 경마장에 메아리 쳤다. 그리고 기수와 경주마들은 함성소리에 파묻힌 채 출발대를 향해 떠났다.

 # 경주 출발=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 출발대 문이 열리고 24마리의 경주마가 일제히 주로로 뛰쳐나갔다. 선두로 나선 경주마와 맨 뒤 경주마의 거리 차이가 거의 없이 한 무리를 이룬 경주마들은 잔디 주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3분여 후 결승선을 앞둔 직선 주로에 경주마들이 나타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결승선 200m를 앞두고 소유싱크가 근소한 선두로 나서자 함성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결승선 100m 전 아메리케인(AMERICAIN·미국산 6세마)과 말럭키데이(MALUCKYDAY·뉴질랜드산 4세마)가 소유싱크를 추월하자 관중석은 환호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3200m 잔디 주로에서 펼쳐진 레이스는 아메리케인의 대역전극으로 막을 내렸다. 소유싱크는 말럭키데이에게도 밀리며 3위로 내려앉았다. ‘호주를, 전 세계 경마팬을 숨죽이게 한 10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멜버른(호주)=류원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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