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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검문소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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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4년 3월 마드리드의 열차폭발 사건은 스페인 총리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와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개인적인 동맹관계를 붕괴시켰다. 두 사람의 동맹은 미군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스페인의 반대 여론을 무시한 것이었다.

아스나르는 여론의 반대 방향을 택했다. 스페인을 미국의 가장 친한 동맹으로, 또 그 자신을 국제사회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폭발사건을 잘못 처리한(바스크 분리주의자 소행으로 비난했기에) 대가로 그는 곧바로 치러진 총선에서 패배했다. 그를 대체한 사회주의자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는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을 고국으로 불러들였다.

지난 4일 바그다드 공항 검문소에서 이탈리아 정보요원 필리포 칼리파리가 미군에게 살해된 사건은 또 다른 개인적인 동맹관계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동맹관계다.

이탈리아에선 총선이 임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회는 곧 이라크 주둔 이탈리아군 3000명의 경비 문제와 관련해 표결을 해야 한다. 이들은 명목상으론 평화유지군이다. 결코 평화롭지 않은 이라크에서 말이다.

대부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온 이탈리아 국민은 칼리파리를 숨지게 한 공격에 격분하고 있다.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여기자 줄리아나 스그레나를 구한 칼리파리는 이탈리아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칼리파리는 자신의 몸을 던져 스그레나를 보호하다 숨졌다. 스그레나도 자동화기에서 뿜어져 나온 수백 발의 총탄 중 파편에 맞아 부상했다. 생존한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의 차가 천천히 가고 있었고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탈리아 정보요원은 공격받고 있던 순간 전화로 로마에 있는 상사와 통화하고 있었다. 살아난 그도 스그레나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서치라이트가 켜지고 총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미국의 사과는 물론 조사 약속과 또 백악관이 '비극적 사건'이라고 표현한 말 모두에 불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탈리아 외무장관 잔프랑코 피니는 8일 미국의 해명이 이탈리아 생존자의 설명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차이점은 바로 사건의 진상이 분명히 밝혀져야 하고, 석연치 않은 검문소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며, 또 책임자를 찾아내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이제까지 미군 검문소는 복무 규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 사령관은 이탈리아인들을 태운 차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으며 검문소를 지나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탈리아군의 이라크 주둔이 이탈리아를 유럽에서 미국의 가장 친한 동맹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가 미국과 유럽.중동 국가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탈리아의 외교정책은 세계대전 이후 단순했다. 국제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된 뒤 변화가 생겼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특히 워싱턴과 '특별한 관계'를 구축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유럽 국가와의 관계에선 어려움을 안겼다.

만일 워싱턴이 칼리파리 사망에 대해 이탈리아가 요구하는 확실한 조사를 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래서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불행한 사고라는 입장을 유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군의 이라크 주둔을 끝내라는 여론과 정치적인 압력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유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