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항운노조 '뼈 깎는 개혁'이 살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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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부산항운노조의 전.현직 고위 간부의 비리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합원 채용.전보.진급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간 것으로 나타나면서 또 한번 거대 노동조합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항운노조의 비리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거의 매년 되풀이되면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이슈다. 물류산업의 경쟁력이 중시되는 이 시점에서 항운노조의 비리는 항만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안이다.

현 항운노조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클로즈드숍의 문제다. 클로즈드숍은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야만 취업할 수 있도록 규정해 노조에 노무 공급 독점권을 허용한 제도다. 다른 노조에는 클로즈드숍이 금지돼 있으나 항운노조는 직업안정법에 의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항만하역노동의 파동성.계절성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받고자 노동조합이 노동력을 관리.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영국.미국 등에서도 실시돼 왔다.

그러나 부두가 기계화.자동화하고 정기 회항선의 비중이 커져 항만하역노동의 파동성.계절성이 크게 축소됨에 따라 누구라도 하역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오픈숍 제도가 외국에서는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로즈드숍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으며 결국은 부산항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다. 부산신항의 개항에 따라 새로이 입주하게 될 외국인 선사들도 항운노조의 기존 관행을 바꾸기를 희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항운노조 비리의 근원이 클로즈드숍에 있다는 것이다. 노조 간부가 노조원의 가입.채용.승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노조 간부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유지해 주는 대가로 노조원들에게서 공공연하게 금품을 수수하고 있다. 그 결과 전.현직 노조위원장들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하는 반면 노조원들은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클로즈드숍으로부터 잉태된 이러한 부조리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둘째는 노조 내부 민주화의 문제다. 항운노조는 노조 대의원의 간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하며, 조장.반장.노조대의원 등도 사실상 위원장의 영향력에 의해 임명되다시피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의원의 간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하는 제도는 현 지도부의 독재를 뒷받침해 줄 뿐이다. 실제로 노조위원장 출마자격이 만 60세로 제한되는 점을 피하기 위해 선거를 4개월이나 앞당겨 편법으로 실시, 재선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노조선거가 노조위원장의 연임을 위해 좌지우지돼 온 것이다.

항운노조의 부패를 척결하고 노조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체 개혁이 필요하다. 일부 노조의 비리로 인해 배태된 부패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는 한국노동운동의 큰 짐이 되고 있다. 항운노조는 청렴하고 민주화된 노조로 거듭나기 위해 자체 개혁을 해야 한다. 항운노조 스스로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상급 단체인 한국노총이 자체 조사를 거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자체 개혁이 미진하다면 외부의 공권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항운노조는 더 이상 노조원을 보호하는 단체가 아니고 일부 노조간부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현재의 항운노조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 오히려 노조로부터 착취당하는 노동조합원을 위한 조치로 이해돼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현행 클로즈드숍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오픈숍 등 경쟁력 있는 인력관리체제로 전환하고, 노무자가 직접투표로 조장.반장.노조대의원.노조위원장을 뽑는 민주적인 선거체제로 개선하는 것이다. 자체 개혁이든 공권력에 의한 개혁이든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항운노조의 발전을 이끌어 내고 항만하역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