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진검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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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 농심신라면배 우승과 응씨배 패배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던 두 강자가 전열을 정비하고 나란히 새로운 대회의 결승에 나선다. 이창호는 14일 중국 창사(長沙)에서 열리는 춘란배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중국의 저우허양(周鶴洋) 9단과 맞선다. 최철한은 기성전에서 박영훈 9단의 도전을 받아 이미 11일 타이틀전 5번기의 첫판을 치렀다. 결과는 백으로 1집 반 패배. 드라마처럼 반전을 거듭해온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이 다시 뼈를 깎는 전장에 나섰다.

◆ 춘란배 세계선수권 결승 14일=춘란배의 적수 저우허양 9단은 농심배 5연승 우승을 이룬 이창호 9단의 위용에 눌려 중량감이 크게 떨어져 보인다. 석 달 전 삼성화재배 결승에 올랐다가 왕시(王檄) 5단에게 2 대 0으로 패배했던 저우허양의 모습과 농심배 마지막 대국에서 왕시를 가볍게 격파했던 이창호의 모습에서도 격차가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저우허양이 최근 쿵제(孔杰)나 후야오위(胡耀宇) 등을 제치고 중국 랭킹 2위로 뛰어올랐다는 사실은 그의 꾸준한 상승세를 말해준다. 특히 저우허양은 역대 전적에서 이창호 9단에게 3승2패로 앞서고 있는 일종의 천적기사다. 중국 측은 저우허양의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바로 이 점에 유일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이창호 9단은 그러나 농심배를 통해 컨디션을 완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최철한 9단에게 국수전에서 3 대 0 완패를 당하고 두 개의 세계대회에서 위빈(兪斌).왕리청(王立誠)에게 질 때와는 천양지차의 기세를 보이고 있다. 이창호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팬들은 이번 결승전을 통해 이창호가 어떤 진면목을 보여줄지 잔뜩 기대하는 분위기다.

◆ 기성전 첫판 박영훈 승리=최철한과 박영훈. 죽마고우 '송아지 삼총사'끼리의 첫 도전기다. 이창호 9단을 궁지로 몰아넣으며 승승장구했던 최철한 9단은 응씨배 패배로 생애 첫 좌절을 맛봤다. 최철한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국"이라고 답했다. 대국을 통해 고통을 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국의 상대가 바로 절친한 동갑내기 박영훈 9단이다. 박영훈은 5년 전에 이미 천원전 우승컵을 따내 송아지 삼총사 중 가장 빨리 두각을 나타낸 기사다. 지난해엔 세계대회인 후지쓰배에서 우승했고, 올 초에는 이창호 9단이 탈락한 중환배의 우승컵을 지켜냈다. 스무살의 나이에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바둑계는 최철한의 우세를 점쳤다. 최철한과 이세돌 9단은 이창호를 넘어서 본 경험이 있는데 박영훈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데 상황이 변했다. 최철한이 응씨배 패배의 후유증 탓인지 첫판에서 패배를 당한 것이다.

서로 치열한 기세로 맞부딪친 도전기 첫판은 장장 9시간을 넘기는 격전이었는데 수비의 박영훈이 공격적인 바둑을 펼치며 승리를 따낸 것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상대 전적에선 쌍방 4승4패. 2국은 18일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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