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view &

돈벌이보다 사람됨을 먼저 가르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정계에서 특채 논란이 대두되고 있다. 기업인들 간의, 그리고 기업인과 공무원 간의 뇌물 수수도 끊이지 않고 있다. 좀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예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답은 하나다. 경제행위 주체자들 하나하나가 윤리성과 지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행동을 하면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길만이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다.

 필자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회사를 공동 창업하던 시기인 1998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단군 이래 최대의 투자가 벤처 기업인들에게 쏟아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기획서 한 장만으로도 자기 돈 하나 없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투자 유치가 가능했던 당시의 행태를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째는 많은 투자가를 울린 벤처 창업자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끌어 모은 돈으로 강남 테헤란로에 번듯한 사무실을 차렸다. 매출도 없는데 자기용은 고급 외제차를 탔다. 급여는 최소 연봉 1억원 이상으로 정했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 5000만원도 없어 설립 등기 비용만 겨우 마련해 놓고는 자본금은 사채 시장에서 빌려 법인을 세운 뒤 자신이 가진 주식을 몇 배에서 몇 십 배에 팔아 치부하기도 했다.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만한 이도 많았다.

 두 번째는 군대 면제를 위해 벤처 기업에 투신했던 천재 예비 사업가의 추락 이야기다. 그는 명문 과학고를 나와 KAIST에 다닐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

 한 회사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부서장으로서 일하던 그는 데리고 있던 부서원 전원을 회유해 별도의 회사를 세우고,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그 뒤 자회사를 여러 개 세우면서 회사 돈을 횡령했다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걸로 대미를 장식했다.

 놀라운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 “최소한 100억원 정도는 숨겨놓았을 것이고 한 2~3년 감옥에 있다가 나오면 평생 먹고살 돈을 챙겼으니 부럽다”는 이가 많았다. 결국 우리나라는 머리 좋은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성공했어도 도덕성과 지혜를 가진 이를 배출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가벼운 형벌도 문제다. 특히 경제 사범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형기를 마치기 전에 풀려나기 일쑤다. 거액의 회사 돈을 횡령한 사람이 평균 3~5년 형밖에 살지 않는다면 누가 몸 바쳐 일을 할까.

 대한민국은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만 하는 나라다. 자원이라고는 사람뿐이니 결국 사람에게 투자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도덕성과 지혜를 높이기 위해선 철학교육과 깊은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철학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다. 전공자가 없으니 대학도 해당 전공을 축소하거나 폐지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배우는 도덕이나 윤리가 성적을 위한 시험과목으로만 느껴질 뿐 인생관이나 올바르고 지조 있는 삶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과목으로 여겨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학 4년 내내 전공을 따지지 않고 철학 등 인문학을 필수적으로 수강토록 할 수는 없을까. 단순히 학점을 따는 과목이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논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보람 있는 과정으로 만들 순 없을까.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한 지인 하나가 인터넷에서 이런 내용의 콘텐트를 가지고 교육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의 서글픈 현주소인 것 같다. 기본 인성교육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지속적인 특채 논란에 배임·횡령 등의 뉴스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사이비 벤처 창업가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철학과 윤리적 소양을 갖추는 게 먼저다. 성공한 이는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