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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그물’로 도 놓친 월척, ‘아주 성근 투망’으로 잡을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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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호 22면

제임스 베이커(80)가 미국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 1988년 한 젊은이가 재무부에 입성했다. 그가 바로 티머시 가이트너(49) 현 재무장관이다. 그때 가이트너는 27살이었다. 그는 재무부가 미국의 경제력이 약화되고 일본이 부상하는 상황에 맞춰 영입한 아시아통이었다. 그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았다.

1985년 G5 플라자합의 vs 2010년 G20 서울컨센서스

가이트너는 재무부에서 국제통으로 성장했다. 베이커가 주도해 체결해놓은 플라자합의(1985년)와 루브르합의(1987년)를 복기하면서 신흥 세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중국과의 전략회의를 앞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베이커가 일본을 상대했던 경험이 중국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년쯤 흐른 뒤인 올 10월 가이트너는 셰쉬런(謝旭人) 중국 재정부장과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경주컨센서스’를 마련했다. 스승 베이커만큼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지 못했다.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인 한국의 중재를 통해 겨우 합의안을 마련했을 정도였다. 베이커는 85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당시 일본 대장성 장관을 물고 늘어져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다.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 G5가 주도
경주컨센서스를 두고 ‘환율전쟁의 종식’, ‘환율전쟁 악화’ 등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단정하기엔 이르다. G20 회원국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아직 주판 튕기기도 끝내지 못했다. 단지 역사적 경험에 비춰 앞으로의 일을 가늠해볼 수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경주컨센서스의 벤치마크로 플라자합의를 꼽는다. 차이점이 있지만 극심한 세계 경제 불균형, 신흥세력 등장(85년엔 일본, 올해엔 중국), 취약해진 미국 리더십 등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표 참조).

플라자합의문은 본문과 부속 합의서, 이면합의로 구성됐다. 본문은 18개 합의 항으로 이뤄졌다. 반면 경주컨센서스는 11개 합의 항으로 구성됐을 뿐이다.

두 합의서의 핵심은 단연 환율 문제다. 하지만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플라자합의 당사국인 미국·일본·서독·영국·프랑스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환율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최근 실물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선 미 달러에 대한 다른 나라 통화 가치 상승이 바람직하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이면합의까지 했다. 미국 달러 가치를 10~12%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달러 자금이 필요한지도 계산했다. 180억 달러였다. 이를 나라별 체급에 맞춰 갹출하기로 했다.

경주컨센서스의 환율 부분은 플라자합의만큼 구체적이고 치밀하지 않다.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시장이 실물 경제 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해 환율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향해 간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모리스 옵스펠드 미 UC버클리대(경제학) 교수는 “1985년과 2010년 모두 미국이 엄청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달러 가치 변동 방향이 달라 (두 합의문의) 차이가 났다”고 해석했다. 85년 당시 미 달러 가치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당시 베이커 재무장관은 달러 가치 상승 추세를 하락 쪽으로 바꿔놓아야 했다. 반대로 요즘 미 달러 가치는 떨어지는 추세다. 가이트너 입장에선 굳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자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 중국이나 브라질 등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 통화 가치를 조작하는 일만 막으면 됐다. 그 결과 ‘시장 결정적 환율 시스템’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G20정상회의 한국 등 신흥국 역할 주목
플라자합의와 경주컨센서스의 또 다른 차이는 무역 불균형 대응이다. G20 재무장관 등은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로 한다”고 합의했을 뿐이다. 애초 티머시는 경상수지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으로 정하려고 했다. 그는 중국이 2~3년 안에 경상수지 흑자를 GDP 4% 이내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독일이 반발해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일단 정리됐다.

G20 회원국들은 11월 정상회의 전까지 별도 협의를 벌여 구체적인 경상수지 목표치를 정하지 않을 듯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나라별로 경상수지 목표치를 제시하고 모니터할 예정이다. 이른바 ‘준칙주의’다. IMF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개별 국가가 적절한 정책을 마련해 실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반면 플라자합의 당사국들은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에도 합의했다. 내용은 다섯 장으로 이뤄진 부속 합의서에 들어 있다. 나라별로 한 페이지씩 할애됐다. 각국 내부 사정과 미국 무역적자 감소라는 변수에 맞춘 금융통화, 재정, 통상 정책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 시절 미국의 주 타깃인 일본은 시장개방·규제완화 정책을 실시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일본은 내수를 늘려 수출을 줄이기 위해 주택자금과 신용대출을 더욱 늘리기로 했다. 미국은 재정적자를 85년 3% 수준에서 이듬해인 86년엔 1%로 줄이기로 했다. 세제개혁을 단행해 민간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영국·프랑스도 재정지출과 인플레이션 억제, 민간 수요 확대 등을 합의했다.

존 코크레인 미 시카고대(경제학) 교수는 “플라자합의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한 이후 체결된 역사적인 합의”라며 “당시 G5는 경제정책 주권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면서 합의문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플라자합의 미국이 약속 지키지 않아
프레드릭 미시킨 미 컬럼비아대(경제학) 교수는 평소 “합의문대로 됐다면 세계 경제는 완전 균형을 이뤘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합의문이 거의 지켜지지 않은 현실을 꼬집은 말이다. 플라자합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85년 당시 주요 5개국(G5)은 플라자합의 직후 약속대로 외환시장 뛰어들었다. 다섯 나라가 2~3주 사이에 120억 달러를 시장에 살포했다. 절반인 60억 달러는 미국과 일본이 부담했다. 사실상 ‘달러 투매’였다. 그 여파로 달러 가치가 뚝뚝 떨어졌다. 85~87년 사이 엔화와 견준 달러 가치는 50% 이상 곤두박질했다. 애초 플라자합의 당사국의 이면합의인 ‘달러 가치 10~12% 절하’를 뛰어넘는 결과(그래프 참조)였다. 당대 메이저 국가들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자 헤지펀드 등이 가세한 결과였다. 달러 가치가 너무 떨어지자 G5 대표들은 87년 프랑스에 플라자합의를 파기하기로 선언(루브르합의)해야 했다. 그런데도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줄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86년 재정적자를 GDP의 1% 수준까지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노력은 했으나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어쨌든 플라자합의를 이끈 미국이 가장 먼저 합의를 깬 셈이다.

일본은 합의를 우직하게 실천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다케시타는 플라자합의 직후 승리감에 취해 지인에게 “마침내 미국이 우리에게 간청했다”고 흡족해했다. 태평양전쟁 패전의 치욕을 씻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고 한다. 플라자합의 합의를 보는 그의 시각이 그랬으니 약속을 어길 리가 없었다. 일본 정부는 금리를 낮추며 가계와 주택 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이는 일본 경제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일본 정부는 1937년 이후 은행 대출을 통제하며 ‘생산적인 부문(기업대출)’에 자금을 우선 배분했다. 가계·주택 대출은 뒷전이었다. 갑자기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게 된 일본인들은 은행 돈을 끌어다 마침 상승하고 있던 주택과 주식에 베팅했다. 자산 집값과 주가가 더욱 가파르게 치솟았다. ‘가미카제 거품’의 본격화였다.

경주컨센서스 성과 뛰어 넘어야
플라자합의는 실패작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 무역과 재정 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촘촘한 합의문을 만들었지만 기대한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음 달 나올 서울컨센서스는 어떨까. 전망은 밝지 않다. 앞선 경주컨센서스는 플라자합의보다 한결 느슨하다.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서울컨센서스가 경주컨센서스를 획기적으로 넘어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로벌 불균형이 다자간 합의로 해소된 적이 없다는 점도 걸린다. 미국이 세계 최대 최권국으로 떠오른 1918년 이후 쇠락하던 경제패권국인 영국은 끊임없이 불균형 문제를 들고 나왔다. 미국과 협상을 벌여 합의안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지 못한 채 대공황 국면에 휘말려 들었다. 불균형이 산업경쟁력 등 구조적인 사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불균형 해소 방법을 국제통화기금(IMF)에 맡긴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G20 대표들은 IMF가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모니터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코크레인 시카고대 교수는 26일 WSJ에 쓴 칼럼에서 “IMF 사람들이 불균형 수준이나 환율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고 균형을 찾아가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Pipedream)”이라고 꼬집었다. 다음달 12일 탄생할 서울컨센서스가 더 큰 성공을 거두려면 경주컨센서스를 뛰어넘는 대화와 타협, 조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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