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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한국에 오는 '가부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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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유녀 오하쓰로 분한 나카무라 간지로.

후지산.기모노(일본 전통옷).스시(초밥).스모(일본씨름)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 상징물로 꼽히는 전통공연 가부키(歌舞伎)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7년 만에 한국 무대에서 공연된다. 2005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국립극장이 마련한 전통극 교류 공연을 통해서다.

다음달 1일부터 3일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가부키는 6일에는 광주, 9.10일에는 부산에서도 공연된다.

이번 공연에 특히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일본 최고의 가부키 명인으로 꼽히는 나카무라 간지로(中村治郞.74.사진)가 직접 출연, 자신의 대표작인 '소네자키 신주(曾根崎心中)'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소네자키 신주는 1703년 오사카의 소네자키 숲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남녀의 동반자살 사건을 '작가의 신'으로 추앙받는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1653~1724)이 각색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이인 간장공장 종업원 도쿠베와 유녀(기생) 오하쓰가 도쿠베를 다른 여자와 맺어주려는 주변의 시도 등 각종 난관에 맞서 자신들의 결백과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새벽종이 일곱번 울릴 때 함께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때문에 일본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린다.

나카무라는 1953년 유녀 오하쓰역을 맡아 아버지와 함께 공연, '센자쿠(扇雀.간지로의 아명) 붐'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53년간 오하쓰역으로 모두 1200여회를 공연해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 중이고, 일본 전체에서 일곱 명 뿐인 가부키 '인간국보' 중 한 명이다. 한국 공연에서도 역시 오하쓰역을 맡고 그의 아들 간자쿠가 도쿠베역을 맡는다. 나카무라는 전 국토교통상이자 현 참의원 의장인 배우 출신 오기 지카게(扇千景)의 부군으로도 유명하다.

나카무라는 9일 한국 공연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가부키 공연이 한국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문화와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해져 양국간 우정이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가부키 공연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음을 좇아가는 서양 음악과 달리 한국의 판소리처럼 음의 고저가 심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 "가부키는 발성도 판소리와 비슷한데, 노래를 부른다기 보다는 감정을 담아 대사를 발성하는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여자 역할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실제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 기술을 익히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02-2280-4115~6.

◆가부키=궁정 귀족들을 위한 부가쿠(舞樂), 무사 귀족들이 즐긴 노(能).교겐(狂言)과 달리 시민계급인 초닌(町人)들의 사랑을 받던 연극이다. 말 그대로 춤과 노래를 곁들인 연극으로 17세기 초 생겨난 이래 4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가부키는 '가부쿠(かぶく)'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유별난 것,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머리 형태나 복장'을 뜻한다. 처음 유녀들 사이에 퍼져 인기를 모았지만 풍기상 문제로 여성의 출연이 금지됐고 곧이어 같은 이유로 미소년들의 출연도 금지돼 1653년부터는 남자들만 출연하고 있다. 도쿄 부근에서 번성한 '아라고토(荒事)' 가부키와 교토.오사카 지역에서 번성한 '와고토(和事)' 가부키로 크게 나뉘는데, '소네자키 신주'는 와고토 가부키다. 이번 공연에는 모두 22명이 등장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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