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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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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진호는 이를테면 전형적인 문청이었다. 도쿠리 스웨터에 낡은 점퍼나 코트 차림으로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들은 바에 의하면 여학생들이 진호만 나타나면 오금을 못 쓴다는 얘기였다. 녀석은 작은 색종이 따위를 지니고 다니면서 거기다 아주 작고 예쁜 글씨로 문장 몇 줄이나 시구를 적어서는 아무에게나 불쑥 내밀었다. 우리는 그런 게 딱 질색이라 주위 친구들은 그들과 얘기 몇 번 해보고는 별로 상종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는 그게 재미도 있고 또 어찌 보면 순수해 보여서 잘 받아주던 편이었다. 지금은 온 천지에 깔린 게 문예창작과지만 당시에는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가 유일했는데 거기 출신들은 모두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명운을 걸었다. 진호 주위가 모두 그쪽 학생들이었다. 이근배가 검은 작업복 차림으로 연말 연초가 되면 신춘문예의 당선 입선작들이 실린 각종 신문을 여러 종류 모아서 끼고 나타나던 게 생각난다. 그는 시조에서부터 시에 동화에 닥치는 대로 응모해서 여러 군데나 당선이 되곤 했다. 우리는 그를 농하느라고 서부영화에 현상범 사냥꾼을 일컫던 말로 '바운티 헌터'라고 불렀다. 그가 지금은 풍류도 있고 느긋한 노년이 되었지만 그때에는 빠르고 재간 많고 눈빛이 반짝이던 문청이었다. 나는 그의 새된 목소리와 빠른 말재간이며 재치를 빗대어 한약방 주인 아들 같다고 그랬더니 사실이었다. 원래 전통적인 동네의 한약방 주인이나 이발소 주인은 입심 세기로 유명한데 늘 단골들을 모아놓고 한바탕씩 너스레를 떨기 마련 아닌가. 진호는 서대문 한옥 많던 오래된 동네의 골목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몇 대나 살아온 토박이로 일명 '서대문 달호'라는 이름난 주먹이었다. 나중에 얘기가 나오겠지만 백기완 친구로 방동규라는 이가 있는데 우리는 그를 '민족주먹 방 배추'라고 불렀다. 그 배추 형이 진호를 만나서 아버지 얘기를 듣더니 느이 아버지가 정재, 두한이 성들 설칠 때 그래도 주먹의 자존심을 지켰느니라고 얘기하니까 진호 녀석이 큰절을 하던 것을 보았다. 진호네 집엘 가면 아버지는 늘 안 보이고 웬 국악 하는 여인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진호의 어머니는 일찍 죽고 의붓엄마가 국악 창극단을 이끌던 소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식구들도 변화무쌍한 서울 살림에서 서서히 몰락해 갔다. 언젠가 진호와 불나기 전의 광화문 시민회관 앞을 지나다가 그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별로 할 일도 없었고 약속이 있던 저녁까지 무엇인가로 시간을 때울 참이었는데 진호가 난데없이 무용 공연 간판을 가리키며 저거나 보다 가자고 말했다. 돈 내고 영화관에도 잘 들어가지 않는데 웬 무용 공연이냐고 했지만 그는 앞장서서 출입구로 갔고 나도 하는 수 없이 따라갔다. 진호가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니까 점퍼 차림의 웬 작달막한 사람이 어깨를 좌우로 흔드는 특유의 걸음걸이로 나왔다. 그래도 알려진 주먹이었던 진호 아버지에게 누군가 말년 생업으로 선처한 자리가 시민회관 '기도부장'이었던 것이다. 입구로 나온 그는 아들이 아니라 후배에게 하듯이 거칠게 물었다.

-임마 웬일이냐, 여긴?

-지나가다 들러 봤어요.얘는 친구예요.

-어 그래? 들와 들와 구경하구 가라.

진호 아버지가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동작이 꼭 권투 선수의 스탭 같아서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혼났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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