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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삼킬 수 없는 가시, 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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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제2보 (17~28)]
黑 . 왕시 5단 白 . 이세돌 9단

대만 재벌 잉창치(應昌期)는 바둑의 세계화에 불을 댕긴 사람이다. 젊은 시절 장제스(蔣介石)의 비서였고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간 그가 어떤 연유로 바둑 룰 연구에 평생을 쏟아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잉창치가 1988년 '세계바둑대회'를 창설하겠다고 말하자 일본은 체면을 생각해 서둘러 후지쓰배 세계대회를 만들었고 이후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대회가 탄생하게 됐다.

잉창치는 자신의 사후에도 대회를 계속 치르기 위한 장치로 '잉창치 바둑기금'을 만들었다. 이 기금은 응씨배 외에 세계 전 지역에서 바둑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잉씨의 아들 잉밍하오(應明浩)는 얼마 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대회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들 대에선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뜻일까. 유서 깊은 잉창치배도 영구히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지 모른다.

왕시(王檄) 5단은 3분의 숙고 끝에 17로 공격해갔다. 사실은 누가 봐도 이 한 수며 상대가 손 뺀 곳을 공격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기세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은 18의 맥을 짚어 22까지 가볍게 틀을 잡아두고 서서히 역습을 노린다.

흑 23은 녹록지 않은 수다. 기리(棋理)에 따르면 A의 두 칸이 맞고 23은 허술하다. 그러나 '참고도 1' 백의 침입은 흑 2, 4로 두어 B, C가 맞보기. 백이 안 되는 그림이다.

24, 26을 선수해 두고 이세돌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거의 노타임으로 두어왔지만 뭔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분위기다. 그때 28의 날카로운 붙임수가 등장했다. 왕시가 깜짝 놀란 듯 한없는 장고에 빠져든다.

'참고도 2'처럼 된다면 흑이 좋지만 백이 이렇게 해줄 리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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