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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러브호텔, 그리고 관광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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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포뮬러 원(F1)과 러브호텔. 별 연관이 없어 보였던 이 둘은 전남 영암에서 절묘하게 조우했다. 지난주 국내에서 처음 치른 F1 코리아 그랑프리 소식을 전한 외지들은 자동차 경주 뉴스와 함께 영암의 러브호텔 광경을 묘사한 기사를 내보냈다. 일부러 취재한 건 아니었다. F1 취재차 온 기자들이 잡을 수 있었던 숙소가 러브호텔로 불리는 모텔밖에 없었던 탓에 하룻밤 자면서 저절로 취재가 된 것이다. 덕분에 영암의 모텔엔 영어 안내책자는 없는데 50인치짜리 대형 모니터와 콘돔은 비치돼 있다는 걸 외지를 통해 알게 됐다.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엔 ‘F1팀들, 섹스모텔로 떨어지다’는 제목의 칼럼까지 실렸단다.

 인구 5만의 영암에 사흘간 외지인 17만 명이 몰려든 이번 대회는 행사만으론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이 나온다. 인근 식당들이 평소보다 두 배 넘게 팔았고, 모텔들이 방을 시간차로 돌리지 않고도 그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영암 역사상 처음으로 수많은 외국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만하면 남는 장사를 했다는 자찬도 나온다.

 하지만 관광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영암이 외신을 통해 러브호텔의 도시처럼 비춰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F1은 17만 명을 한꺼번에 한 장소에 집결시킬 만큼 강력한 관광이벤트였다. 한데 관람객 대부분이 주말 새벽같이 내려갔다 밤을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수십만원짜리 표를 사서 자동차 경주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다른 즐길 거리가 있었다면 경기만 보곤 기를 쓰고 집과 영암 사이를 왕복했을까.

 관광 인프라의 부실로 인한 아쉬운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암웨이는 이달 제주도에 8000여 명의 자영사업자를 이끌고 가서 세미나를 열었다. 이 회사는 매년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여는데, 그동안 모두 외국으로 나갔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규모의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주도를 빼곤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다음에 한국에서 행사를 치를 계획도 없다고 했다.

 요즘 관광은 먹고 보고 자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놀고 즐길 거리 같은 관광 인프라가 결합돼야 비로소 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만으론 안 된다는 얘기다. 금수강산도 없는 인구 500만 명도 안 되는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올해 약 15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목표로 한다. 최근 컨벤션 센터와 공연장, 카지노·테마파크 등을 연계한 종합리조트단지를 준공하면서 입국자 수는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었다. 한데 ‘한국 방문의 해’를 맞은 우리나라의 올 입국자 목표는 830만 명이다. 금수강산도 있고, 한류(韓流)라는 문화적 모멘텀도 있는데 관광 매력은 이 정도다. 관광 인프라의 부실이 한몫 톡톡히 한다. ‘엄숙한’ 나라 싱가포르도 외자로 지어대는 카지노를 한국에선 갖가지 족쇄로 묶어 놓는 등 이러저러한 제한이 많다 보니 관광사업 투자 유치도 어려움이 크다. 금수강산과 한류를 우리의 관광자산으로 활용하려면, 이젠 좀 열린 마음으로 관광 인프라 구축을 생각할 때다.

양선희 week&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