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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는 독립이 아닌 광복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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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우리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을사조약 100년, 8.15 광복 60년, 한.일 국교수립 40년의 지난 1세기 동안에 겪은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미래의 한.일관계를 정립해 나아갈 국민적 결의와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5000년 역사 가운데 한때의 암흑기였던 일제 강점기와 그 질곡을 벗어난 8.15의 역사성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기록해야 할 것인지 이제는 정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광복 60주년을 맞는 우리의 첫째 과제라고 믿는다.

광복 후 60년 동안 8.15의 역사적 성격이 정립되지 못하고 광복인 지 독립인 지 정부와 학계에서조차 혼동하고 있다. 만일 8.15가 독립을 의미한다면 일제 강점기의 우리 역사는 단절되고 일본 역사의 일부로 편입되며 1945년 8월 15일 비로소 해방과 독립이 되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당시 한국의 통치권자 고종(高宗)은 1905년 12월 3일 을사조약 무효의 밀지를 미국정부에 보냈고, 1907년 6월 29일 헤이그 세계평화회의에도 밀사를 보냈다.

3.1 독립선언서의 첫 줄에는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여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독립의 요구'가 아닌 '독립의 주장'인 것이다. 또 우리 헌법은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49년 제정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도 8월 15일을 광복절로 정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이제 광복 60주년을 기해 모든 역사의 기술은 독립이 아닌 광복이어야 한다.

더욱이 학계와 정.관계까지도 한국사의 폄하와 식민사관이 잔존하고 있으며 최근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에 관한 조례 제정 기도 등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인식과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근래 독립기념관에서 일본의 청소년을 비롯한 관광객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왜곡된 한국사와 식민사관으로 교육된 의식하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갈 것인가. 한국인이 받았던 고통을 다만 인간적 연민으로 느끼는 것 이상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사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저들이 저지른 죄과를 반성할 기회가 될 것인지 의문이 간다. 독립기념관을 광복기념관으로 이름을 고친다면 왜 광복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시 내용도 대폭 보완해 동아시아에 웅대했던 우리의 역사와 찬란했던 문화, 그리고 우리 민족의 우수한 자질과 품성, 미래의 비전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일제의 만행과 잔혹행위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청소년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현재 대학입시와 고교수업에서 국사교육이 경시되는 현실에서, 독립기념관을 관람하는 청소년은 단지 우리의 불행했던 한 시대를 그려놓은 한 편의 영상물을 보고 나오는 기분이 아닐까.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 실패한 역사의 교훈,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미래에 대해 가슴속 깊이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제3의 외국인에게도 한국사에 대한 바른 인식과 광복을 위한 우리의 민족운동, 일제의 잔학성을 보고 느끼게 해야 한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정부와 광복60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독립기념관을 광복기념관으로 바꿔 우리 역사의 바른 교육의 장으로서 충실히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기정 미래도시연구원장.전 청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