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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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지 아세요?"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회 유상옥(72) 회장이 얘기 도중 양복저고리를 뒤져 뭔가를 뽑아 들었다. 손바닥 만한 업무용 수첩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코리아나화장품 수첩이 아니다. 18년 전인 1987년에 퇴사한 옛 직장(동아제약)의 것인데, 겉장에 '2005년' 이라는 인쇄가 선명하다.

"1959년 입사해 평사원에서 전문경영인에까지 오르며 젊음을 바친 직장입니다. 집에 연도별로 47개를 빠짐없이 간수해놨지요. 퇴사한 뒤에도 보내달라고 요청해 1년 잘 쓰고는 다시 차곡차곡 모으지요."

이어 유 회장의 지론이 나온다. "놓아둘 것을 그냥 놓아두는 것이 문화의 시작"이란다. 사실 그는 '문화를 아는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국보 284호(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등 문화재와 민예품을 5000점 소장하고 있고, 사립박물관 '스페이스C'(서울 신사동)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문화사관학교'의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가 맡고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의 박물관회(경복궁 사회교육관)는 박물관대학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1만674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 박물관회의 올해 특설강좌가 8일 시작한다.

"1년 과정의 우리 학교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이름 높아요. 매주 4시간씩 진행되는 마라톤 강의의 출석율이 80%이하면 자동 퇴학입니다. 리포트도 두 번 제출해야 하고요. 한국문화 전반을 현장답사와 함께 강의하는데, 제가 알기에 77년 문을 연 박물관회는 국가기관이 진행하는 사회교육 활동의 원조랍니다."

지난해부터 제9대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이 학교의 6기(82년도) 졸업생이다. "내가 아는 한국문화의 모든 것은 이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삼국시대 도기(陶器)기름병(화장품 등을 담는 초미니 용기)이나 약연(藥硯.약을 가루내는 그릇) 등 민예품 콜렉션을 본격화한 것도 이 학교 공부 덕이다. 주말 서울 인사동 화랑가 순례나 발품을 파는 답사활동도 그때 이후 몸에 밴 습관이다.

"박물관회 동기생들과 함께 '널리 공부한다'는 뜻인 박연회를 만들어 월례모임을 20년 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박물관 자원봉사자 중에는 우리학교 졸업생이 꽤 많지요."

그의 문화사랑은 민예품에서 시작해 서예, 현대미술로 '영역 확장'을 거듭했다. 오세창의 글씨 등 서예작품을 550점이나 갖고 있고, 백남준의 로봇작품만 해도 50점에 이른다. 그런 유 회장의 생활신조는 '청부낙업(淸富樂業)'. '깨끗한 부를 일구고, 문화의 즐거움을 함께 하는 삶' 정도일까? 아니, 그 이상이다. 유 회장은 "문화마케팅이 우리시대 기업활동의 기본이며, CEO부터 문화를 알아야 한다"며 정색을 했다.

글=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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