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 월동 배추(12월 수확) 산지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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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1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배추밭에서 농민 조평갑씨가 재배 중인 월동 배추를 들어보이고 있다. 배추값이 치솟자 해남 농민들은 월동 배추 파종량을 평년보다 20% 정도 늘렸다. 작황은 좋지만 배추값 하락 추세가 계속되자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9월엔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3000원까지 오른 바 있다. [김진경 기자]

“농사가 잘 돼 배추 상태는 좋은데 값이 너무 떨어져 이대로 가다간 밭을 갈아엎을 판입니다.”

 21일 오후 전남 해남군 황산면, 6500㎡(약 2000평) 밭에 배추 농사를 짓는 조평갑(54)씨는 한숨을 쉬었다. 조씨의 밭에서는 12월 중순에 수확할 월동 배추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날씨 탓에 결구가 나빴던 고랭지 배추와 달리 속도 잘 여물었다. 하지만 조씨는 “잘 자란 배추가 더 원망스럽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올해 배추값이 많이 올라 일부러 더 심었는데 후회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월동 배추가 한창 자라고 있는 해남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금 같은 추세로 배추값이 하락할 경우 자칫 산지에서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치가 ‘금치’로 불리는 배추 파동이 엊그제인데, 이번엔 폭락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22일 서울 가락시장 배추 경매가는 특상품 기준으로 한 통에 3460원. 1년 전 경매가가 한 통에 117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다. 하지만 추석 직후 1만3000원까지 뛰었던 데 비하면 뚝 떨어진 것이다. 전라도 지역의 김장 배추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11월 중순에는 가격이 평년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장 배추 다음에 나오는 월동 배추다. 해남 황산농협 유문식 팀장은 “지난해 월동 배추 시세가 좋았던 데다 올해 고랭지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뛴 것을 보고 농민들이 배추를 많이 심었다”며 “평년에 비해 수확 물량이 20% 이상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저장 기간이 사흘인 고랭지 배추, 김장 배추와 달리 월동 배추는 60일까지 저장이 가능한 품종이다. 유 팀장은 “심은 양이 많고 저장 기간도 길어 어떻게 처분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배추 농사가 불과 한 달여 만에 ‘기회’에서 ‘위기’로 바뀐 셈이다.

 해남의 배추밭 대부분은 이미 중간유통상인들과 ‘밭떼기’ 계약이 맺어져 있다. 밭떼기 금액은 3.3㎡(약 1평)당 8000원 선으로 지난해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유통상인들은 현재 계약금액의 50%만 농민들에게 지불했다. 한 농민은 “배추값이 폭락하면 나머지 50%는 받을 수 없게 된다”며 “배추값이 오르면 유통상인이 재미를 보고 떨어지면 농민만 망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배추값은 올 한 해만 포기당 1500원(1월)에서 1만3000원(9월)까지 널뛰기를 했다. 이마트 채소 바이어 주동환 과장은 “날씨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체 수확량만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면 올해와 같은 극단적인 널뛰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등에서 수확량 정보를 미리 농민들에게 제공해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농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남=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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