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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맛 씁쓸한 '시신 기증 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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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65세가 넘은 사람이다. 이 땅에 살면서 이웃들로부터 받은 많은 사랑을 갚을 길 없어 이 몸 하나라도 사후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의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내도 함께했다.

우리는 K대학 부속병원에 시신 기증 서약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씁쓸한 경험을 했다.

전화를 걸어 시신 기증 의향을 밝혔더니 서류를 보내왔다. 그런데 등기도 아닌 일반우편으로 달랑 시신 기증 서약서 한 장만 보내왔다. 사진을 찍고, 관련 서류를 떼, 서약서와 함께 보내긴 했지만 병원이 기증자를 배려하거나 기증자에게 고마워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전화로 "적어도 회신용 우편료 정도는 첨부하는 배려가 필요했다"고 하자 병원 측에선 "열 장을 보내면 한두 장밖에는 돌아오지 않으니 병원에선 우편료만 손해보게 된다"고 해 쓴웃음만 지은 일도 있다.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고자세처럼 느껴졌다.

우리 정서로는 아직까지 시신 기증을 서약하기까지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기증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보다 성의있고 정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손태종.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