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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신주도형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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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지능적인 악당은 주로 영국인들이다. 잔인한 악당은 주로 동구인들이고, 이슬람교도는 광신자들로 많이 묘사된다. 미국인들이 가진 인종적 편견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한국 등 동아시아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일도 열심히 하고 머리도 좋은 편이지만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이 잘 드러났던 것은 1994년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일으켰던 동아시아의 고도성장에 대한 논쟁이다.

크루그먼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고도성장에 있어 기술혁신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의 공헌이 미미했다는 일련의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이것은 집단주의적 문화가 창의성을 죽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창의성의 한계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고 했다.

크루그먼의 주장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혁신능력 없이 투자만 많이 하는 재벌 중심의 경제모델을 해체하고 중소기업이 이끄는 혁신주도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금과옥조가 되었다.

우리 경제가 더 발전하려면 기술혁신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크루그먼식의 분석은 그를 위한 바른 지표가 될 수 없다.

우선 우리의 과거 경제체제가 기술혁신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크루그먼의 주장과 달리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국제기준으로 높은 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적 연구가 많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제 미국에서 취득한 특허 수에 있어 미국.일본.독일.대만.영국에 이어 세계 6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2000년 기준) 기술혁신을 잘하는 나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라는 것이 크루그먼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이 개인의 '천재성'이라는 차원에서만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스웨덴.네덜란드.핀란드 등이 노벨상 수상자는 많지 않아도 고급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현대 기술혁신에 있어 개인의 능력보다 기업의 조직능력, 산학협동 제도, 정부 지원 등이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미 60여년 전 기술혁신론의 아버지인 슘페터는 앞으로는 19세기식의 천재 발명가보다 잘 조직된 대기업 연구소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이에 비춰 볼 때 대기업들은 위계질서적 문화 때문에 혁신능력이 떨어지니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옳지 않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대규모의 조직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대기업이며, 중소기업이 혁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부 산업의 경우에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협동하지 않으면 시장성 있는 상품을 내놓기 힘들다. 필요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창의력을 잘 융합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지 대기업과 무관한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크루그먼류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그 근저에 깔려 있는 동양문화에 대한 편견이다. 동양의 전통문화가 위계질서와 공동체를 강조해 개인들이 '튀는' 것을 싫어하고 비합리적인 사고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산업화 이전의 전통문화는 이러했다.

19세기 초 산업화 이전의 독일을 방문한 많은 영국인은 독일인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비웃었다. 지금 영국인들이 독일인은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차가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서양인들은 일본인들이 게으르고 시간관념도 없으며 선천적으로 기계를 다루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문화란 경제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히 합리적 사고가 지배적이 되고 사회의 분화가 진행되면서 '튀는' 개인들이 설 자리가 더 많아진다. 우리나라의 영화 등 문화산업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은 우리 문화가 태생적으로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좋은 증거다.

기술혁신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하려면 우리는 소위 혁신주도 경제체제론에 깔린 문화적 편견과 기술혁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버려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