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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스펙 7종 세트’에 허우적대는 오늘의 2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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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엄기호 지음, 푸른숲
266쪽, 1만3000원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민태원의 에세이 ‘청춘예찬’은 어쩌면 교과서 속의 먼 이야기가 됐는지 모르겠다. 책을 펼치자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자학적으로 ‘잉여’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충격적이다. 이 책을 통해 엿본 20대들은 ‘가슴 설레는’ 청춘이 아니라 가슴이 짓눌린 청춘, ‘기쁜 우리 젊은 날’이 아니라 지치고 고달픈 젊은 날이다. 부모들은 어렵사리 ‘공부시켜’ 대학에 들여보낸 자녀를 보며 뿌듯해할지 모르지만, 정작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남모를 열패감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20대’ 얘기를 담고 있다. 2007년에 출간된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가 한국의 20대가 처한 팍팍한 상황을 정치·경제적 이슈로 설명했다면, 이 책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지은이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기 위해 지난 2년간 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를 기록했다. 지은이의 입장은 이렇다. 요즘 20대에게 “유아적이고 의존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하다”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한다” “탈정치화 되었다”는 비난은 부당하다고 한다. 이들이 기성세대가 겪은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재단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전에 기성세대가 이들에게 준 ‘성장’의 환경을 돌아보라는 제언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사랑과 연애, 가족과 소비와 같은 일상사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의 대학생이 어디 명문대생뿐이랴. 그런데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 체제는 명문대와 지방대라는 이분법을 넘어 보다 더 촘촘하게 작용하며 많은 학생들을 무력감으로 주눅들게 한다. 그런 와중에 학벌과 학점·영어 시험이라는 ‘스펙 3종 세트’를 넘어서 자격증과 해외 연수를 포함한 5종, 외모관리와 성형까지 든 7종 세트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은이는 ‘스펙’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청년실업 문제를 모두 찌질한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려야 하는 상황이 청춘을 ‘자학하는 잉여’로 만든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다.

 책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왜 냉소적인지(탈정치화가 아니다!), 이들이 얼마나 부모에 대한 죄책감을 머리에 짊어지고 사는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 다이어트와 외모관리에 매달리는지를 그들의 ‘언어’로 전한다. 부모들의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자랐으면서도 정작 부모에게 멍든 속내는 보여주지 못하고 겉도는 대화만 한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가족끼리도 감정노동을 수행한다”는 풀이다.

 20대를 씁쓸하게만 그렸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고 귀를 기울인 지은이의 성찰을 외면하는 구실로 삼기엔 아까운 책이다. 그보다는 스스로를 ‘잉여’ ‘루저’라고 생각하는 20대들이 왜 생겨났는지, 우리 사회의 교육·정치·사회 환경을 되돌아보는 편이 낫지 싶다. 지은이처럼 “누가 너희더러 한심하다고 했니?”라며 등을 토닥거려 주지는 못할지언정 말이다. 20대 전후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권하고픈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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