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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기 맞은 외국계 헤지펀드, 10월 증시 흔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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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동향이 국내 주식 시장에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상당수 헤지펀드가 10월 말 또는 11월 말에 결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간 투자했던 것을 정리하는 시기가 바로 10월과 11월인 것이다.

‘정리’라면 대부분 악재를 떠올린다. 돈을 빼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올 10월과 11월은 상황이 좀 다르다. 호재도 있다. 바로 ‘공매도 청산’이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사서 갚는 것.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 때 사용하는 투자 기법이다. 주식을 일단 비싸게 팔았다가 값이 떨어진 뒤 싸게 사서 갚으면 이익이 생긴다.

공매도는 국내 시장에서 헤지펀드들이 애용하는 수단이다. 국내 주식 공매도의 약 90%가 외국인 손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또 헤지펀드들이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매도를 했던 헤지펀드들은 언젠가 이를 정리해야 한다.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는 외국인 매수세 유입을 뜻한다. 그래서 호재다.

실제 최근 들어서는 결산기를 맞은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를 청산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2일과 13일의 일이다. 지난달부터 매일 순매수 행진을 하던 외국인들이 이날에는 순매도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일부 종목에는 대량 순매수가 들어왔다. 하이닉스(351억원)·호남석유(212억원)·삼성SDI(171억원)·LG전자(171억원) 등이다. 이들은 올 7월 이후 ‘주식 대차잔고’가 많이 늘어난 종목들이다. 대차잔고란 누군가 공매도 등을 하려고 빌린 뒤 아직 갚지 않은 주식의 수량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대차잔고가 늘던 주식에 순매수가 들어왔다는 것은 공매도 청산이 이뤄지고 있다는 신호”라 고 설명했다.

하이닉스는 공매도 정리에 따른 외국인 순매수 덕에 12, 13일 이틀 새 주가가 4.7% 올랐다. 박 연구원은 “올 하반기 들어 대차잔고가 많이 늘어났던 다른 종목도 헤지펀드 결산 덕에 주가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 대차잔고가 많이 증가한 종목은 하이닉스·호남석유 등 말고도 STX팬오션·대우인터내셔널·STX조선해양·LG이노텍 등이 있다. 다만 이런 종목에 투자할 때는 헤지펀드 결산에 의한 주가 상승은 단기적인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환차익 투자 정리 우려=최근 헤지펀드들은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노리고 한국 주식을 많이 샀다. 이는 지난달 국적별 외국인 순매수에서 드러난다. 룩셈부르크(5544억원)·네덜란드(5025억원)·싱가포르(3723억원)·아일랜드(3377억원) 등이 순매수를 많이 했다. 세금 혜택 때문에 헤지펀드들이 애용하는 지역이다. 지난달 원화 가치의 가파른 오름세를 타고 단기차익을 얻으려는 헤지펀드들이 ‘바이 코리아’를 한 것이다.

이 자금들은 10월과 11월 결산기를 맞아 빠져나갈 수 있다. 꼭 결산기 때문이 아니라도 원화 가치가 달러당 1100원 선에 이르면 더 이상은 많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차익 실현에 나설 것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환차익을 보고 들어왔던 자금이 유출되는 것은 일단 주식시장에 악재다. 그러나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삼성선물 배신영 연구원은 “지금은 장기 투자자금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에 많이 몰려드는 상황”이라며 “장기 자금 유입세에 묻혀 헤지펀드 자금 유출은 국내 주식 시장에 별반 큰 악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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