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영어의 말문 여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5면

성적은 있는데 실력이 없다.

▶ 이보영 에듀박스 교육공학연구소장

필자가 전경련 주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느꼈던 점이다. 이제는 더 이상 토익 만점자를 우수 인재로 보고 선발하는 시대가 아니다. 각종 시험에서 응시자가 입 꼭 다물고 머리만 굴려 답안지를 작성하는 시대는 갔다. 분명하고 뚜렷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 시험의 관건이다. 그것도 영어로!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나 문법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에 관한 한 우리는 학교에서 지나칠 만큼 열심히 해오지 않았던가. 학교에서 영어를 10년 이상 배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으니, 학교 영어 교육은 분명 문제가 없지 않다. 영어 말하기 교육의 필요성은 그래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필자는 학교 교사들에게서 배운 교과서 영어가 오늘날 내가 쓰고 있는 영어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음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배운 중요한 영어의 '원칙과 룰'을 적용해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단 한 줄의 글과 한 마디의 말로도 표현해 볼 기회가 없어 문제였다. 또 교정을 받고 고쳐가면서 더 나은 문장을 더 신속하고 유창하게 말하기 위해 발전시켜 볼 기회도 없었다. 원리만 대충 배우고 감을 좀 잡을 만하니까 학교에서의 영어 수업 시간은 끝나버린 것이다. 구슬은 충분히 모았는데, 꿰어서 한 번 보배로 만들어 볼 시간이 없었다고나 할까. '알고는 있는데 말은 안 되는' 영어의 원인은 배운 문법을 말과 글로 연습해 '나의 것'으로 만들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던데 있었다 할 것이다.

말하기 실력은 쪽집게식 강의나 2개월 속성 집중반에서 어느 날 하루아침에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 말하기를 한다는 것은 올바른 문장을 만들기 위한 사고를 집중적으로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계별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

어릴 적부터 영어의 구조를 서서히 이해해 가야 한다. 생활영어 두세 개 단어로 간단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간간히 하는 것이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 그러다가 조금 더 길고 복잡한 문장을 쓰고 읽는 과정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말로 하는 훈련까지 연결하는 것이 좋다. 이때 체계적인 교재에서 제시하는 과정을 따라 진도를 나가되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선생님이 곁에서 방향을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커지고 좀 더 많은 영어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의식적으로 실수를 덜 저지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또 보다 다양한 문장을 만들어서 말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글을 읽는 것, 좋아하는 비교적 쉬운 글을 반복해서 읽는 것 등도 이 과정에서 늘 병행해야 한다. 말을 유창하고 정확하게 잘 하는 사람치고 글 읽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학습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정기적으로 평가해 의욕을 고취시키고 학부모들도 아이의 부족한 면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1544-0505.

이보영 (에듀박스 교육공학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