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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귀농 8년차 무안군 김규호씨, 족집게 농사로 쪽파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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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농민 김규호(40)씨가 10일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 있는 자신의 밭에서 양손에 쪽파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규호씨 제공]

한 단(200g)에 3000원짜리 쪽파가 귀농민의 인생을 바꿨다. 전남 무안에서 쪽파 농사를 짓는 김규호(40)씨 얘기다.

김씨는 올여름 1만3000㎡(약 4000평) 밭에 심었던 쪽파 6만1000단을 대형마트에 납품해 1억80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걸린 기간은 약 40일. 복권 당첨 못지않은 ‘대박’을 터뜨린 그는 무안 농민들 사이에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이 됐다.

김씨가 농사를 지은 건 올해로 8년째. 부모님은 무안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젊은 시절 그는 땅 파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장비 기사 일에서부터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뒤늦게 초당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목포의 한 이벤트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상사 눈치 보는 일,못하는 술 마시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돌려받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귀농’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직 젊으니 최선을 다해 보자”는 말로 설득해 가족이 함께 무안으로 내려갔다. 김씨는 “젊음 하나 믿고 시작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동네 어르신들 수확량을 따라가기 버거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농업 관련 책도 많이 보고 머리를 썼지만 뜻대로 안 되더라. 해가 갈수록 빚만 늘었다”고 말했다.

2006년 큰맘 먹고 전남대 농대에 학사 편입을 했다. 농사일을 손 놓을 수 없어 수업을 일주일 중 사흘에 몰아 들었다. 하루 수업량 8시간에, 광주까지 통학하는 데만 왕복 3시간이었다. 36세 늦깎이 농대생에게 교수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김씨는 “덴마크·네덜란드 등 농업국가의 선진 기술을 많이 배웠다”며 “그때의 경험이 다른 농민과 차별화시켰다”고 말했다.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올 7월 이마트 채소바이어 주동환 팀장이 찾아온 것. 주 팀장은 “올 추석 쪽파 물량이 많이 부족한 걸로 파악됐다. 이마트에서 수확 물량 전체를 구입할 테니 재배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주로 양파 농사를 지어왔던 김씨는 고심 끝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8월 7일 파종을 한 뒤 ‘밤 12시 퇴근, 새벽 4시 출근’하는 고된 일상이 반복됐다. 가장 큰 문제는 이틀에 한 번꼴로 오는 비였다. 김씨는 “파뿌리가 빗물에 오래 잠기면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양제를 잎에 하나하나 직접 발라줬다”고 말했다.

광어 분말로 만든 영양제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전남 완도 수협에서 가져왔다. 무농약 농사를 짓는 그는 쪽파용 해충 퇴치제도 손수 개발했다. 은행잎과 마늘에 당밀을 넣어 발효시킨 뒤 설탕을 섞어 만들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잦은 비 때문에 무안의 다른 쪽파 농가는 대부분 농사를 망쳤지만 김씨가 재배한 쪽파는 달랐다. 뿌리가 튼튼하고 싱싱했다. 이마트는 당초 계약보다 금액을 높여 이 쪽파를 한 단에 3000원에 사들였다. 김씨는 “수많은 농민이 판로가 없어 애써 농사지은 작물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유통 채널을 확보한다는 건 농민에게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농민들이 땅만 보고 살 게 아니라 유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꾸준히 선진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금 이웃 농민들과 함께 김장철 쪽파 물량 50t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성공을 하니 비결을 알려 달라는 이들이 많았다”며 “전에는 혼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다같이 성공해서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내겠다”며 웃었다.

무안=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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