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의 서울 트위터] 이 친구, 한쪽 눈만 낙타 돼 봐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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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날은 중요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예뻐 보여야 하는 날이었지요. 한껏 치장하고 나왔는데 웬걸, 마스카라를 깜빡했습니다. 속눈썹을 낙타처럼 만들어 준다는 바로 그 ‘마법’ 말입니다.

지하철 안. 번뇌는 시작됐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그냥 화장할까?’ ‘창피하잖아. 속눈썹 올린다고 전지현 되는 것도 아닌데…’.

아아…. 고민 끝에 저는 마스카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주변 눈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죠.

한데 한 올 한 올 속눈썹이 올라가는 기쁨도 잠시. 땀이 난 손에서 미끄러진 마스카라가 옆자리 아주머니의 옷 위로 떨어졌습니다. 새까만 얼룩이 묻었고, 그녀의 호통은 ‘곤파스’가 되어 지하철 안을 종횡무진 날았죠. “지하철이 너거(너희) 집 안방이야? (이후는 상상에 맡깁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연방 사과를 했지만 곤파스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쪽팔림의 끝, 저는 한쪽 눈만 낙타가 된 채로 다음 역에서 내렸습니다. 거참, 그날 이후로는 지하철에서 거울 보는 것도 눈치가 보입디다.

알고 보니 ‘지하철 화장녀’는 꽤 많았습니다. 아예 기초화장부터 하는 용맹스러운(?) 분들도 보입니다. 트위터에 물었습니다.

“너무 게을러 보인다” “화장품 냄새 역하다” “제발 분가루 날리지 마라”는 의견, 대부분 에티켓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살짝 옆 나라를 볼까요. 일본 도쿄시에서는 “집에서 (화장) 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합니다. 다리 쩍 벌리고 앉는 ‘쩍벌남’,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통화하는 ‘고래녀’에 이어 지하철 ‘화장녀’도 퇴출순위에 오른 거죠.

아마도 우리네 도시 삶 때문일 겁니다. 치열한 경쟁, 숨막히는 스케줄. 외모는 가꿔야겠고, 시간은 없고. 겨우 틈새 시간을 찾았는데 사방엔 눈들이 번득이고….

정신없고 복잡하기는 도쿄도 마찬가지겠죠. 문화가 다른 것 아니냐고 묻기 전에, 왜 그런 캠페인이 진행됐는지 곰곰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하철 화장녀’임을 고백한 친구가 푸념을 해 왔습니다.

“요새는 택시에서도 화장하는데, 택시 안에서도 에티켓 지켜야 해?”

이 친구, 한쪽 눈만 낙타 돼 봐야… ‘아, 그래서 주리가 지하철에서 거울만 봐도 울렁증이 생기는구나’ 하려나 봐요.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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