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배추 대란, 수입만이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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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배추 대란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상기후와 병충해 발생에 따른 출하 감소에 의한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김치 종주국의 명성이 자연의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린 것이다. 정부는 중국산 배추 수입을 응급조치로 내놨다. 그러나 중국도 우리나라와 같이 이상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배추는 흉작으로 수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이다. 수입이 당장의 해결책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 배추 수입이라는 해법은 사태의 본질을 따지기 전에 여론에 몰려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반응한 면이 있다.

필자는 40여 년간 종자, 그것도 배추종자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한 농업인이자,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 작금의 배추사태를 좀 더 냉정히 분석, 판단하고 싶다.

통상적인 배추 재배 및 출하의 시기적인 특성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배추가격 폭등사태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6월에 종자를 파종해 9월부터 수확하는 배추의 대부분은 해발 600m 이상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여름 배추다. 재배기간에 극한의 폭염과 장기간 내린 폭우 등 이상기후와 맞물리면서 시장 수급 문제를 야기했다. 그야말로 천재(天災)며 불가항력이었다.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4대 강 사업에 따른 농지 감소로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정치공세다. 당장에 출하되는 배추 또한 해발 200m 이상인 전국의 주요 재배지에서 나오는 배추로 기상이변에 따라 제때 옮겨심기를 못해 출하량 감소가 예상되지만 김장철까지의 수요를 감당하는 데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전망이다.

고민은 가을 김장배추다. 지금의 배추 시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김장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시장의 숨은 수급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중부지방 산지에서 모종 옮겨심기가 늦어져 수확 감소가 예상된다는 소식을 접한 남부지방 농가들이 예년보다 10% 이상 더 파종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11월에 수확하는 김장배추와 그 이후 출하되는 월동배추 공급량은 확 늘어날 전망이다. 만약 각 가정에서 김장시기를 11월 중순 이후로 미룬다면 김장 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정부는 중국산 배추의 무관세 수입이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아무리 수급이 균형을 되찾는다고 해도, 중국산 배추가격에 국산 배추가격을 맞출 수는 없다. 그런데 시장 문을 열어놓았으니 가격차이를 노린 수입배추가 쏟아져 들어올 테고, 배추값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배추밭을 갈아엎는 등 누가 봐도 인재(人災)로밖에 볼 수 없는 제2의 배추사태가 생길 수 있다. 당장 수입에 급급하기보다는 치밀한 수요와 공급 예측을 통해 ‘김장 늦추기’ 캠페인 등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물론 수확철 이전에 이상기후가 다시 발생한다면 이런 전망은 모두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나 수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이 시기에 극한 한파 같은 기상재해가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식탁을 흔든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을 기계로 찍어 조절하는 단기성의 공산품과는 다른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내병성 등 지속적으로 첨단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농업이 고부가가치 생명산업이자, 식량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고희선 농우바이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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