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20년간 초·중·고교 책 1만종 수집한 양호열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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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찮은 게 후대엔 소중한 물건이 되는 것이 수집의 매력입니다."

최근 대구에서 '일제 강점기 자료전'을 연 양호열(楊浩烈.48.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사진)씨는 자신의 '수집 철학'을 이렇게 표현한다. 수집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 벌써 귀해진 물건은 수집도 어렵거니와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의 주된 수집 대상은 국내 초.중.고 교과서다. 올해로 벌써 20년이 됐다.

"1895년 소학교령 반포부터 7차 교육과정까지 대략 교과서 5만종이 발행됐습니다. 이 가운데 1만여종을 수집했습니다. 한국전쟁과 미 군정 시기 교과서가 많이 빠져 있어요. 교과서는 우리 교육사를 볼 수 있는 프리즘입니다."

그는 교과서 수집의 1인자로 통한다. 그동안 교과서를 수집하느라 민통선 마을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한창때는 5년동안 자동차 엔진까지 교환하며 60만㎞를 다니기도 했다. 양씨는 도로나 댐 건설로 헐리거나 수몰되는 마을을 주로 찾고 있다.

그는 먼지 낀 옛 교과서를 구하면 집으로 가져와 먼지를 털고 찢어진 부분은 풀로 붙였다.

또 책을 뒤적이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교과서 모으기에 재미를 붙이면서 자신이 하던 여행 가이드 일도 그만 뒀다.

가족들은 그러는 양씨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매일처럼 책 먼지를 덮어쓰면서 '직업병'도 생겼다. 호흡기가 나빠지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고 결국 두 차례나 코 수술을 받았다.

"계속 해야 하나 고민도 컸습니다. 그걸 잊게 해 준 게 신교육령 100주년이 되는 95년 대구 첫 전시였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전국에서 문의가 답지하고 결국 서울 전시로 이어졌습니다. 그때부터 교과서 수집은 사명이 된 거죠."

그가 모은 교과서는 이제 연구 자료가 돼 그의 도움으로 몇편의 논문도 나왔다. 첫 전시회를 계기로 명예교사로 위촉돼 8년간 교과서와 관련된 강연을 했다. 관련 전시회의 기획과 자문도 맡고 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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